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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_4548_무작Non-doing(반야심경으로 시을쓰다)_안직수저 (해외배송 가능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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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_4548_무작Non-doing(반야심경으로 시을쓰다)_안직수저

저자 :안직수 지음 | 엄남미 옮김
출판사 :도반
발행일 :2016-10-14 출간 
페이지수/크기 :170쪽/137 * 211 * 10 mm /214g 
ISBN:9788997270293(899727029X)


[책소개]
불교 신문 기자이면서 시를 쓰며 문인 활동을 하고 있는 안직수 기자의 반야심경으로 창작한 시『무작(Non-doing)』. 작품 속에서 작가는 일상 속 반야심경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부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따르려고 하며, 특히 반야심경을 무척 좋아하는 수행자인 저자는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경전이며, 가장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반야심경으로 시를 창작했다.

[출판사서평]
반야심경으로 시를 쓰다.

불교 신문 기자이면서 꾸준하게 시를 쓰며 문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직수 기자가 무척 야심찬 출간을 하였다.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경전이며, 가장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반야심경으로 시를 창작한 것이다. 상당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반야심경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있지 않고서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시도를 한 것이다. 존경하는 큰스님께는 야단을 맞기도 했다고 한다.

시집 열기 전에 커다란 호기심이 발동하면서 온갖 촉각들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책을 볼 때는 뽑지 않던 비판의 검을 뽑을 준비를 하게 된다. 이것은 불자라면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반야심경은 그런 경전이다. 누구나 보고 읽고 외우지만 또 누구도 쉽지 않으며 그와 관련된 글을 쓴다는 것은 더군다나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자신이 쌓은 이미지나 자신을 보호하던 보호막을 완전히 걷어내고 진짜와 한번 부딪치는 비장한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으며 무척 재미있다. ‘크다’라는 의미의 마하에 대해 작가는 ‘어머니 마음’을 비유한다. 마하는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세계, 더 심오한 경지를 말한다. 즉, 우리가 상상하는 우주보다 더 큰 세계가 마하의 세계다. 그 단어를 작가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자식의 귀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이 마하라고 말한다.
잔뜩 힘을 주고 보려고 했던 마음을 비웃듯 작가는 일상 속에서 반야심경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시를 보며 가끔은 반야심경에 대한 생각을 잊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또 한 사람의 마음에서 아주 작은 꽃들이 피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이래서 반야심경은 참으로 훌륭하다는 느낌을 다시 받았다.

반야심경을 시로 쓴 시인의 이야기는 반야심경의 크고 깊은 뜻에 비하면 너무나 소박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삶의 살아 있는 이야기 속에서 피어나는 반야심경은 틀림없이 살아 있는 것이다.
작가가 반야심경을 완벽히 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부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따르려고 하며, 특히 반야심경을 무척 좋아하는 수행자인 것은 분명하다. 무엇을 더 바라리오.

반야심경을 시로 쓰며 작가는 부처님께 더욱 가까워지는 환희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를 읽는 독자들도 함께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렇게 또 많은 이들이 조금씩 부처님께 가까워지는 것,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 아니겠는가.

머리글에서 작가는 빚을 갚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불교활동을 해온 작가로서는 주변의 모든 사람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은인이고, 인연이다. 그 빚은 갚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글이 한편의 반야심경이다.

다른 많은 이들도 반야심경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으로 아주 자유롭게 다양한 시도를 해보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함께 공부해 가는 것이 아닌가.

쉽지 않는 영문 번역에 용기를 내어 준 엄남미 작가에게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도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훨씬 많은 독자층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여러 사람이 함께 볼 수 있는 길을 하나라도 열어 가는 것이 얼마나 큰 공적이겠는가? 작가도 번역가도 모두 스스로를 던지는 용기가 있으니 깨달음에 길이 있다면 맨 앞에 서서 달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시도들을 할 지 큰 기대를 갖게 된다.

시집을 내며

항상 알게 모르게 죄 짓고 살고, 도움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늘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방법을 찾지 못했었다.
불교신문 기자로 재직하면서 특히 많은 스님, 불자들의 마음을 받았다. 그 밥값부터 해야지 하다가 ‘불교의 진리가 담긴’ 반야심경을 시로 엮어 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족하지만 한 단어 한 단어 뜯어내 내용을 되새기며 54편의 시로 반야심경을 풀어보았다.
이 좋은 가르침을 기회가 되면 외국인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반야심경은 종교적 믿음을 제시하는 글이 아니라, 삶의 바른 방향과 철학을 내포하고 있어 종교와 무관하게 누구나 그 뜻을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엄남미 작가가 흔쾌히 격려해 주며 번역을 맡아줬다. 참 감사하다.
깊은 내용을 포함한 〈반야심경〉을 너무 생활의일부로 보며 가볍게 쓴 것은 아닌지, 야단도 맞았다. 평소 존경하던 스님께 “좀 더 인생을 살면서, 치열하고 간절한 마음이 일어날 때 다시 쓰라”고 야단 들었다. 원고를 통째로 버릴지 며칠을 고민했다. 당연히 따라야 할 말씀이지만, 한 편 한 편의 글을 보며 아낌없이 질타를 해주셨는데, 솔직히 버리고 다시 쓸 용기가 없어 출간으로 이었다. 스님께 죄송하고 또 죄송한 마음이다.
평소 존경하던 유원근 교수님께서 보내주신 시평에 감사드린다. 밥값을 하겠다고 시작한 시 창작으로, 또 신세를 지고 빚을 졌다.
무엇보다 처음 불교에 발을 디디면서 인연이 된, 나의 첫 주지스님이신 자승스님, 25년 넘는 시간 묵묵히 지켜봐 주시며 삶을 보듬어 주신 보현선원 회주 성관스님께 감사를 드린다.
문예지원 제도를 통해 시집을 낼 수 있도록 기금을 마련해 준 염태영 수원시장님과 문화재단 임직원분, 부족한 글을 격려하며 선택해 준 심사위원님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시집에 길게 서평을 쓰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어쩌면 당분간은 더 책을 내지 않을 듯하여 이참에 감사의 말을 적는다.
불교신문 대선배이면서, 늘 인자하게 맞이해 주시고 글 스승이 되어 주신 무산(오현) 큰스님과 고은 선배님, 홍사성 선배님께. 또 홍성란 선생님께 늘 감사드리고 산다. 그리고, 소녀같은 눈빛으로 “이 시 완성되면, 우리 출판사에서 책 내고 싶어요” 라던 출판사 편집장님의 말이 글을 완성하는데 격려가 됐다. 수원에서 같이 문학을 이끌어 주고 있는 ‘시와 사람들’ 문우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가족에게는 늘 미안하고, 고맙다.
너무 감사한 분이 많다. 이 한 편의 시가 그분들이 전해 준 격려의 말에 담긴 의미처럼, 사회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요즘 사람들, 너무 무겁다. 삶의 무게를 조금 덜고 사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안직수의 시집 《무작》의 시세계

《반야심경》 시편(詩篇)의 가능지평 - 유한근


1. 《반야심경》 전편의 시적 형상화
안직수의 《무작(無作)》은 《반야심경》을 모티프로 하여 쓴 54편과 경외시(經外詩) 2편이 묶인 시집이다. 《반야심경》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줄인 말로, 불과 한자 260자로 구성된 경문이다. 예불이나 각종 의식에 초종파적으로 지송되는 경전이다. 그 뜻은 “위대한 지혜의 완성과 그 정수를 담은 경'이라는 것으로 불경 중 으뜸이며 8만대장경이 집약된 기본적인 경이다. 그 경문의 260자를 시의 제목으로 삼아 안직수 시인은 시 54편을 썼다.
불교에 대한 관심과 불교에 대해 아는 시인은 많다. 그러나 그 많은 불교시인들이 왜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왜 직구를 던지지 않았을까? 왜 불교의 핵에 몸을 던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을 갖고 나는 《무작(無作)》을 읽었다. 그리고 무릎을 쳤다. 이 시집의 제목부터. 이 시집은 제목은 ‘무작(無作)’이다. ‘무작’은 만들지 않는다 이다. 의도적으로 창작하지 않았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불국사의 ‘무설전’을 그렇게 이름했듯이. 창작했으면서도 창작하지 않았다라는 불교적 인식으로 발상된 제목이다. ‘무설전’은 신라 문무왕이 세운 설법하는 강당이다. 《법화경》을 강의했다는 이 교실에는 말이 무성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이 없는 곳이라는 의미로 무설전(無說殿)이라 이름한 것은, 진리란 언어를 빌리지 않고 설법해야 부처의 진리를 바르게 전달할 수 있다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의미를 환기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따라서 무작(無作)은 억지로 만들지 않아야 시가 된다는 시인의 시학이 함유된 언어이다. 그렇다면 그의 시는 어떨까?

어머니 마음이 이만치 될까
퇴근시간 늦으면
바람에 삐거덕대는 대문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마음이
‘마하’만 할까.

그 사랑, 우주보다 크다.
-시 〈마하(摩訶)〉 전문

'마하'는 '크다'는 뜻이다. ‘크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대하다’, ‘뛰어나다’, ‘많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 ‘한글’의 ‘한’ ‘하다’와 같은 의미와 상통된다. 위의 시 〈마하〉에서는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 바람에 덜컹거리는 싸리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어머니의 마음을 우주보다 크다고 인식한 시이다. 그 마음은 사랑일 것이다. 모성이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다. 나아가 자비일 것이다. 귀가하는 발걸음 소리와 바람 소리는 자연의 소리고, 우주의 소리이기도 하다. 그 소리에 대한 인식은 큰 깨달음이다. 크다는 무한함이기 때문에 제한 없이 열린 공간이다. 경계가 없는 공간이다. 그것을 담은 그릇에 따라 그 그릇을 채울 수 있는 크기이다. 어머니의 마음 크기에 따라 그 마음의 크기는 다르다. 불교에서 계량의 개념이 없다. 없다기보다는 그것을 초월한다.

'반야'는 '지혜'를 의미한다. 그 지혜의 형상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바다보다 땅이 넓다.
물을 버리고 나면 빈 그릇 남듯
바다 아래도 땅이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지혜,
반야다.
-시 〈반야(般若)〉 전문

‘반야’는 범어로 프라즈나(prajna)이다. 진실된 생명성을 깨달았을 때 얻게 되는 인간의 지혜를 말한다. 반야는 진리에 대한 새로운 자각에서부터 시작된다. 체험이나 실천을 통하여 체득하는 자각이 ‘반야’이다. 선정(禪定)의 체험으로 가능한 경지이다. 판단능력인 분별지(分別智, vijnana)가 아니다. 오히려 무분별지(無分別智)이다. 위의 시 〈반야〉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지혜가 반야이다. 바닷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 바다 속 땅까지를 볼 수 있는 지혜가 반야이다.

나이만큼 번뇌의 숫자도
줄어든다. 그저,
잘 죽을 걱정만 하면 된다.
단 하나
다음 생에 또다시 이 짓을
반복해야 한다는 염려에
조그만 복이라도 지어봐야지
생각만 짓다가 또 하루
석양을 맞는다.
-시 〈바라밀다(波羅蜜多)〉 전문

'바라밀다'는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paramita)의 의역으로 '완성'을 의미한다. 현실의 괴로움에서 번뇌와 고통이 없는 세계인 피안으로 건넌다는 뜻이다.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이 ‘완성’이기 때문에 이를 의미한다. 온전한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다음 생에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위의 시에서처럼 “조그만 복이라도” 더 지어야 “다음 생에 또다시 이 짓을/반복”하지 않게 된다. ‘이 짓’이란 온갖 번뇌로 고통 받는 삶을 의미한다. 이런 “생각만 짓다가 또 하루/석양을 맞“게 되는 시인의 마음을 위의 시 〈바라밀다〉는 노래한다.
불교에서의 ‘심(心)’은 마음, 심장을 의미하며, 그 뿐만 아니라 만상의 본질 즉 정수(精髓)를 뜻한다. 그러니까 심경(心經)은 마음의 경전을 의미한다. 그 심경을 안직수 시인은 시 〈심경〉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이거 하나는 가지고 살아야지.
자식에게 남겨줄 멋진 한마디 말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리된 언어 하나는 갖고 살아야지.
-시 〈심경(心經)〉 전문

위의 시 〈심경〉에서의 “멋진 한마디 말” “정리된 언어 하나”는 아포리즘적 언어이다. 격언 ㆍ 잠언 ㆍ 좌우명 등 여러 가지 말로 표현되는 선어(禪語)이다. 그 언어를 갖고 살기 위해 시인은 시를 쓴다. 자식들에게 들려줄 말 대신에 시인으로서 남기고 싶은 말인 시를 그래서 쓰게 된다. 불교시인의 좌우명 같은 시의 언어는 선어(禪語)인 것이다.
선어(禪語)는 선적 언어이다. 선(禪)이 불립문자 격외별전으로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목표로 한다고 할 때, 선어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언어이어야 하며, 혹은 그것을 이룬 깨달음의 언어이어야 한다. 지혜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견성성불의 언어인 선시가 게송(偈頌)이라 할 때,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언어인 시는 불교적인 시이다. 그러나 이 모두 선어에 대한 인식이나 그것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불교시로 마찬가지이다. 《불교문학의 이론》을 정립하려한 김운학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禪, 그 자체는 문학이 아님에도 그것이 훌륭한 문학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은 禪은 창작하는 힘과 詩的 靈感을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 이유를 “禪이 人生에 대한 여유와 감동의 자연세계를 그대로 표출시키기 때문”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선은 직관적이다. 언어를 초월한다. 그래서 선어는 언어 이전의 언어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의 표현구조인 상징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선시는 초월한 언어인 상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상적인 사유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뜬금없는 언어와 낯설어하기를 통해서 얻어지는 언어, 무의식적으로 비뜰어진 언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난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직수의 시는 이와는 다른 형태로 표출된다. 그것을 탐색해보자.

2. 끈금 없기와 낯설게 하기와 선시(禪詩)
줄글 형태로 쓴 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을 보자.

중국 한 관리가 빈 쌀독 부여잡고 울고 있는 아낙네 보고 측은지심 일어 금화 한잎 전해줬대요. 아비가 그 일 알고 돈을 빼앗아 도박장 가려다가 말리는 아들도, 부인도 죽이는 일이 있었다지요. 세인들이 할 수 있는 자비심이 거기까지네요.
모스크바 박물관에는 늙은 노인에게 젖을 빨리는 젊은 여인의 그림이 망측하게 걸려 있어요. 혁명을 꿈꾸다 아사형을 받고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막 해산한 딸이 가슴을 내어줬대요. 생명을 가엽게 여기는 건, 부끄러운 일도 무언가 바라고 하는 일도 아니랍니다. 그 여인이 바로, 관세음 관자재 대비관음보살입니다.
-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전문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다. 이 보살은 세상의 모든 것은 관조하여 자비의 힘으로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여 왕생도(往生道)로 인도해주는 보살이다. 위의 시는 산문으로 쓰여 졌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 중국의 한 관리 이야기는 측은지심으로 금화 잎으로 적선한 에피소드를 시인은 세인의 자비심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노인에게 젖을 물리는 젊은 여인의 그림은 관자재보살의 보살행으로 인식하고 쓴 시이다. 이 그림은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라는 이름의 작품인 것으로 보인다. 노인의 이름은 시몬이고 딸의 이름은 페로다. 이 그림과 얽힌 이야기가 다소 우리에게는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서 시인은 불교의 생명 존중사상을 본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계율에는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말자는 불살생(不殺生)의 계율”이 있다. 이는 이타행(利他行)의 실천행이지만 생명의 중요성을 환기하기 위한 계율이다.
우리의 생명을 구성하는 5요소를 불교에서는 오온(五蘊)으로 지칭한다. 오온(五蘊)은 물질[色], 감각[受], 지각[想], 의지와 행동[行, 인식작용[識])으로 인간에게 실제로 존재하는 요소인데, 그 본성을 근원적으로 살펴볼 때 그 실체가 아예 없다는 인식이 《반야심경》의 인식이다. (여기에서 이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하지만) “조견 오온개공 도 일체고액(照見 五蘊皆空 度 一切苦厄”이 그것이다. 그것을 안직수 시인은 5편의 시로 노래한다. 그중 〈오온(五蘊)〉을 보자.

따끔하다.
이발을 하고 나면 꼭 어딘가
작은 머리카락 한 개가
옷에 박혀 찌른다.
슬쩍슬쩍 옷을 털어봐도 헛수고다.
하루 종일 몸을 찌르다가
옷을 벗어 꼼꼼히 뒤지고야
작은 머리카락을 본다.
이 작은 게, 이 작은 게
이 큰 몸을 아프게 한다.

큰일은 상처가 되지 않는다.
작고 소소한 일이 가시처럼
마음에 박힌다.
그것도 삶의 부분이다.
-시 〈오온(五蘊) 전문

이 시는 위에서 보듯이 이발 후 생기는 작은 머리카락 하나를 모티프로 해서 쓴 시이다. 인체의 고통에 환기시켜주는 시이다. 작은 머리카락이 큰 고통을 느끼게 하는 우리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이다. 그것을 통해 “큰일은 상처가 되지 않는다./작고 소소한 일이 가시처럼/마음에 박힌다./그것도 삶의 부분”라는 아포리즘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시 〈일체고액(一切苦厄)〉에서는 너무 아파 숨쉬기도 힘들다고 우는 아이에게 “인생이란 즐기기도 하지만/때때로 버텨야 할 때도 있단다”라고 삶에 대한 관조적 말을 유언처럼 전언한다. 또한 시 〈도(度)〉에서는 “뗏목 만들어 강 건넜으면/버려야지./그 뗏목 지고 간다고/다시 쓸 일 있을 줄 아냐/뗏목 지고 가느냐/갈 곳도 채 이르지 못하는 인생”임을 환기시켜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과는 다르게 무소유(無所有)의 미학을 일깨워준다.

탄소 수소 질소 산소
물 공기 바람 흙
물질을 이루는 네 가지 물질을
과학과 철학은 각각 이렇게 부른다.

글 쓰고, 생각을 말하는 나도
조용히 이파리 틔우며 여름 한철 자라는 너도
눈에 보이지 않는 네가지 물질로 나뉘어
흩어진다. 죽는다.

그런데도 참 아웅다웅 산다.
온갖 지랄 다하고 산다, 거기까지다.
-시 〈색즉시공 色卽是空〉 전문

위의 시 〈색즉시공(色卽是空〉은 서양의 인식인 생명체의 4가지 유기물과 우주를 형성하는 4원소, 우리가 잘 아는 바슐라르의 4원소론을 제시하고, 사람인 나와 식물인 너도 “눈에 보이지 않는 네 가지 물질로 나뉘어/흩어진다. 죽는다./(...)아웅다웅 산다./온갖 지랄 다하고 산다”고 자조적으로 노래한다. 그리고 시 〈공즉시색(空卽是色)〉에서는 “냇물에/나뭇잎 하나 띄워놓고/저 멀리 떠나가는 모습을 보다가/다시 눈 앞 냇물을 보니/그 물, 그대로다”(시 전문) 라고 짧게 노래한다. 가는 것이 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있음이 곧 없음이며, 없음이 동시에 있음”이라 불교 이론의 요체를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삼라만상은 시간의 흐름과 장소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흐를 뿐이니, 일정한 실체가 없는 비어 있는 것이며, 그렇다고 텅 비어 있음이 물질적인 현상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진리를 쉽게 풀어서 비유한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는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그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시간
혼자 가는 길은 쓸쓸하고
혼자 먹는 밥은 텁텁하다.

같이 가자. 함께 가자.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같이 갈 때
비로소, 비로소 행복하다.
-시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전문

시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는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을 제목으로 한 54편중의 마지막 시이다. 이 시의 메시지는 “혼자 먹는 밥이 텁텁하”고 “혼자 가는 길이 쓸쓸”하기 때문에 “같이 가자, 함께 가자” 그리고 “너와 내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절은 “가자. 가자. 피안으로 건너가자.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가자. 가서 깨달음을 얻자”는 말이다. 시에서는 “함께 가자”고 노래한다. 그것은 동행하기를 원하는 것이며 도반(道伴)이 되기를 권유하는 것이다. 파편화되어 버린 우리의 사회와 우리 모두의 의식에 경종을 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이 시에 행간 속에서는 자리행(自利行)만 행할 것이 아니라, 이타행(利他行)으로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대승불교적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반야심경》의 선어를 모티프로 한 시가 아닌 경외시(經外詩) 〈기도〉의 아내에게 바치는 시에도 엿볼 수 있다. “전생에 기도 좀 더하지/복 좀 더 쌓아놓고 이 세상 오지/어쩌다 내게로 와서/가난한 집으로 시집와/피곤한 몸 눕히고 땀 송글송글 맺히며/골아 잠자고 있누.//다음 생엔 좀 더/많이 가진 남자 만나라고/잠든 아내 대신 기도한다”(시 〈기도〉 전문)가 그것이다. 소박한 기도지만 이보다 더 큰 기원은 없을 것이다.
시는 시인의 마음을 그린 언어로의 형상화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이 본디 없는 것으로 이르지만, 시인은 그 마음자리를 올바르게 깨닫고 밝은 지혜를 얻기 위해 시를 쓴다. 그리고 자신의 시가 가장 신비하고 밝고, 가장 높은 주문이 되기를 바란다. 그로인해 중생들에게 다소 위안이 되고 마음이 구원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안직수 시인은 큰 지혜와 참 마음이 들어있는 《반야심경》을 모티프로 본래의 자신의 진솔한 마음으로 인식하고 표현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아내에게, 중생들에게 선물(?)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 점이 궁금하다.

[목차]
1. 무작(54편의 연작시)

마하 摩訶 ┃반야 般若 ┃바라밀다 波羅蜜多 심경心經
관자재보살 觀自在菩薩 조견 照見 오온 五蘊 개공 皆空 도 度
일체고액 一切苦厄 사리자 舍利子
색불이공 공불이색 色不異空 空不異色
색즉시공 色卽是空
공즉시색 空卽是色
수상행식 역부여시 受想行識 亦復如是
시제법공상 是諸法空相
불생불멸 不生不滅
불구부정 不垢不淨
부증불감 不增不減
시고 是故
공중무색 空中無色
무수상행식 無受想行識
무안이비설신의 無眼耳鼻舌身意
무색성향미촉법 無色聲香味觸法
무안계 無眼界
내지 乃至
무의식계 無意識界
무무명 無無明
역무무명진 亦無無明盡
무노사 無老死
역무노사진 亦無老死盡
무 無 고 苦 집 集 멸 滅 도 道
무지역무득 無智亦無得
이무소득고 以無所得故
보리살타 菩提薩唾
고심무가애 故心無?碍
무가애고 無?碍故
무유공포 無有恐怖
원리전도몽상 遠離顚倒夢想
구경열반 究竟涅槃 삼세제불 三世諸佛 득 得
아뇩다라삼먁삼보리 阿?多羅三?三菩提
시대신주 是大神呪 시무상주 是無上呪 시무등등주 是無等等呪
능제일체고 能除一切苦 진실불허 眞實不虛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經外 詩

2. 기도
3. 아직 낡지 않은 책상

시평
- 유한근, 계간 〈인간과문학〉 주간. 동국대 문예창작과 교수

[책속으로]
1. 마하 摩訶

어머니 마음이 이만치 될까
퇴근시간 늦으면
바람에 삐거덕대는 대문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마음이
‘마하’만 할까.

그 사랑, 우주보다 크다.

2. 반야 般若

바다보다 땅이 넓다.
물을 버리고 나면 빈 그릇 남듯
바다 아래도 땅이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지혜,
반야다.

3. 바라밀다 波羅蜜多

나이만큼 번뇌의 숫자도
줄어든다. 그저,
잘 죽을 걱정만 하면 된다.
단 하나
다음 생에 또다시 이 짓을
반복해야 한다는 염려에
조그만 복이라도 지어봐야지
생각만 짓다가 또 하루
석양을 맞는다.

4. 심경 心經

이거 하나는 가지고 살아야지.
자식에게 남겨줄 멋진 한마디 말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리된 언어 하나는 갖고 살아야지.

5. 관자재보살 觀自在菩薩

중국 한 관리가 빈 쌀독 부여잡고 울고 있는 아낙네 보고 측은지심 일어 금화 한닢 전해줬대요. 아비가 그 일 알고 돈을 빼앗아 도박장 가려다가 말리는 아들도, 부인도 죽이는 일이 있었다지요. 세인들이 할 수 있는 자비심이 거기까지네요.
모스크바 박물관에는 늙은 노인에게 젖을 빨리는 젊은 여인의 그림이 망측하게 걸려 있어요. 혁명을 꿈꾸다 아사형을 받고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막 해산한 딸이 가슴을 내어줬대요. 생명을 가엽게 여기는 건, 부끄러운 일도 무언가 바라고 하는 일도 아니랍니다. 그 여인이 바로, 관세음 관자재 대비관음보살입니다.

16. 시제법공상 是諸法空相

잡초를 베어 낸 자리에
야생화 어떤 꽃 심을까
고민하는 사이에
땅 아래 밑둥서 싹이 오르더니
흰 민들레 피었다.

우주만물은 이미 가득 채워져 있는데
헛고생 했다.

27. 무의식계 無意識界

물고기가 집을 짓고 낮잠을 자는데
황새가 날아와 콕콕 부리로 집을 흔든단 말이지
깜짝 놀라 집에서 나오면 잡아먹힐 것이고
무신경하게 계속 잠을 자면 또하루 지나갈 것인데

황새가 배를 채우느냐 물고기가 사느냐는
결국 지 하기 나름이지.
황새하기 나름이지, 물고기 하기 나름이지.

28. 무무명 無無明

십초도 버티지 못할 무게를
들었다 놓는 역도선수 친구도,
일분도 지나지 않아 사라질 분노에
차량에서 고함을 질러대는 운전자도,
오년도 지키지 못할 권력을 쥐고
세상을 다 바꾸겠다는 위정자도,
나도

조주의 뜰에 모두 오시어
차나 한잔 하시게.

38. 이무소득고 以無所得故

여보, 옆집 영순이네 갔시유.

더 갖고 싶다
더 사랑하고 싶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타고 싶다
더더더 하다가, 간밤에
그냥 갔시유. 돈이 쬐까 뿐인데 부줏돈 더 달라 안하겠쥬?

經外 시

기도

전생에 기도 좀 더하지
복 좀 더 쌓아놓고 이 세상 오지
어쩌다 내게로 와서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
피곤한 몸 눕히고 땀 송글송글 맺히며
골아 잠자고 있누.

다음 생엔 좀 더
많이 가진 남자 만나라고
잠든 아내 대신 기도한다

아직 낡지 않은 책상

베니어 합판으로 만든 앉은뱅이 책상
나 태어나기 전
공부 시작한 누나 위해 만든 아버지 소품을
50년 세월 끌고 다니다 보니
다리 한쪽 균형이 맞지 않아
나무를 덧대 아이들이 쓰고 있다.

몇 번의 이사에도 버리지 못하고
책상도 밥상도 쓰고 있다.

늦은 귀가 날,
책상 위에 아이가 아빠보란 듯 성적표를 올려놨다.

귀한 베니어 합판 구해
뚝딱거리며 책상 만들던
할아버지 마음을 손녀가 채워주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안직수

저자 안직수는 1971년 의왕에서 태어나 고천초, 수원북중, 수원고, 단국대와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했다. 현 불교신문 기자, 1996년 월간 〈문학공간〉에 시로 등단. 시집 〈안직수의 대화〉와 칼럼집 〈세잎 클로버〉 〈한국의 대종사들〉 〈아름다운 인생〉 〈암자를 찾아서〉 번역서 〈울어버린 빨강 도깨비〉 등이 있다.
역자 : 엄남미
영문 번역자 엄남미는 아침 습관 컨설턴트. ‘국내 1호 습관 변화 전문가’로서 한국형 미라클모닝 열풍을 만들고 있는 주인공이다. 한국형 미라클모닝이란, 삶에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는 자기 확언과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습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저자가 운영하는 한국 미라클모닝 카페를 통해 이 효과를 체험하고 있다.
엄남미 컨설턴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어교사이자 번역가이면서 두 아들을 둔 평범한 직장인 워킹맘이었다. 그러나 2010년 루이스 헤이의 〈나는 할 수 있어〉를 번역하며 자기 확언에 대한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를 통해 변화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을 키우며 컨설턴트로서의 꿈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할 엘로드의 〈미라클모닝〉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의 중요성을 깨달아, 자기 확언과 아침습관의 결합을 통해 매일매일 자신을 변화시키는 한국형 미라클모닝이라는 새로운 실천모델을 만들어 냈다. 이를 통해 아침 습관을 하나의 이슈로 만들며 방송, 연재, 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여성 공감〉 〈화제집중〉 〈화예TV〉 등의 방송과 〈한국 미라클모닝〉 등의 연재, 고려대학교 등의 강연을 통해 학생과 직장인, 주부 등을 대상으로 인생을 바꾸는 아침 습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또한 한국 미라클모닝 카페를 직접 운영하며 많은 회원들이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작가의 말

지난 19년간 불교신문 기자로 재직하면서 많은 나라를 방문했던 기자는 “대승불교는 한중일에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책임감을 가졌다. 유럽에서는 일찍이 초기불교를 받아들여 명상수행과 다양한 경전 발간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왜 대승불교의 가르침은 서구에 그리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까.

최근 들어 경전 해설서가 다수 출간됐지만, 한문을 기본으로 하는 경전은 여전히 어렵다. 〈무작〉의 창작은 거기서 시작됐다. 〈반야심경〉은 대승경전의 핵심이다. 이를 생활에서 풀어보자는 시도다.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은 쉽고, 다양한 비유를 통해 가르침을 전하고, 게송 형태로 암송돼 전달됐다”는 점에서 시는 어쩌면 경전을 해설하는데 가장 적절한 방법은 아닐까.

올해 1월부터 시작한 〈무작〉 창작은 7월까지 이어졌다. 단어를 해체해 총 54편의 글제를 뽑았다.

“외국인에게 한국불교를 알리고 싶다”는 그의 바램에 호응이 있었다.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외국계 기업에서 활동했던 엄남미 번역작가가 “시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흔쾌히 번역작업을 시작한 것. 엄 작가는 번역을 위해 화계사 외국인 선원을 찾고, 태국 아잔브라흐마 스님을 찾아갔다. 또 다양한 외국인을 만나 번역한 시를 보여주며 감수를 했다.

엄남미 작가는 “번역 과정에서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전에는 가끔 절에 가는 정도였는데,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게 됐고, 불교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한다.

서평을 쓴 유한근 교수는 “ 불교에 대한 관심과 불교에 대해 아는 시인은 많다. 그러나 그 많은 불교시인들이 왜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왜 직구를 던지지 않았을까? 왜 불교의 핵에 몸을 던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을 갖고 나는 《무작(無作)》을 읽었다.”며 “‘무작’은 만들지 않는다 이다. 의도적으로 창작하지 않았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불국사의 ‘무설전’을 그렇게 이름했듯이. 창작했으면서도 창작하지 않았다라는 불교적 인식으로 발상된 제목이다. ‘무설전’은 신라 문무왕이 세운 설법하는 강당이다. 《법화경》을 강의했다는 이 교실에는 말이 무성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이 없는 곳이라는 의미로 무설전(無說殿)이라 이름한 것은, 진리란 언어를 빌리지 않고 설법해야 부처의 진리를 바르게 전달할 수 있다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의미를 환기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따라서 무작(無作)은 억지로 만들지 않아야 시가 된다는 시인의 시학이 함유된 언어이다.”고 전했다.

〈무작〉은 시 창작의 지평을 넓힌 마중물이다. 사회나 개인의 삶을 소재로 하던 기존의 시 창작 영역을 〈반야심경〉 뿐 아니라 다양한 철학서로 옮겨갈 수 있는 초석을 놓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반야심경을 시로 푼다’는 작업만으로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많은 작가들에 의해 다양한 경전, 고전 철학이 문학으로 재탄생하기를 기대한다는 유한근 교수의 평이다.

시인들의 평가

홍사성 월간 유심 주간… “천의무봉, 선녀의 옷에는 바느질한 자리가 없다는 뜻처럼, 글이 군더더기 없이 자연스럽고 완벽하다”

혜관스님 불교문예 발행인…“삶의 곳곳에서 현현되는 불교적 깨달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시집은 불교적 가르침으로 삶을 재인식시킴으로써 어리석은 현대인의 등짝을 내리치는 죽비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형순 소설가…“나는 왜 이런 발상을 못했는지 아쉽다. 문학의 지평을 새롭게 넓힌 시도다. 문학사의 한 부분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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