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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3459_맹자와 공손추 - 남회근 저작선 9(남회근 저) (해외배송 가능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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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서적 3459_맹자와 공손추 - 남회근 저작선 9(남회근 저)

저자 : 남회근
역자 : 설순남

출판사 : 부키
발행일 : 2014. 3.17
페이지수/크기 : 396쪽 | 150 * 225 mm
ISBN-10 : 8960513784 | ISBN-13 : 9788960513785

[책소개]
중국의 사상과 문화를 빚어낸 『맹자와 공손추』. 《맹자》는 맹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유가의 중요 경전이고, 《공손추》는 그 중에서 저자 남회근이 가장 중요한 편으로 꼽는 것이다. 《맹자》는 심성 수양과 왕도 정치의 실현에 초점을 맞추지만, 수양이 왜 왕도의 본질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명확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점을 지적하며, ‘호연지기’와 ‘부동심’으로 표현되는 기의 수행이 ‘내성외왕’에 이르는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출판사 서평]
중국의 사상과 문화를 빚어낸 심성 수양의 근거와 이치를 밝히다!

『맹자와 공손추』는 저자가 『맹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편으로 꼽는 것이다. 『맹자』에 대한 전통적 해석의 초점은 심성 수양과 왕도 정치의 실현에 있지만 수양이 왜 왕도의 본질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명확하지 않았다. 저자는 『맹자와 공손추』에서 그 점을 지적한다. 맹자가 강조한 것은 ‘호연지기’와 ‘부동심’으로 표현되는 기(氣)를 닦는 것이 중국 사상의 핵심인 ‘내성외왕(內聖外王)’에 이르는 출발이자 그 내용이라는 것이다.

맹자가 밝힌 심성 수양의 방법은 의(義)에 근거한 뜻과 기(氣)의 수행에 있다. 저자는 바로 그것이 중국의 수많은 철학, 사상, 문화를 일구어 낸 기초임을 밝히기 위해 “경전과 역사를 함께 탐구해 체득하고” “제자백가를 두루 꿰는” 방식으로 강론한다. 또 맹자의 가르침을 불가와 도가의 수행법과 비교하여 같음과 다름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이 책은 수행의 실전 지침은 물론이고 중국 역사의 밑바탕을 폭넓게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 수양과 수행의 이치, 왕도 정치가 서로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은 송대 이후 이학가들의 공통된 주장이지만 그 논리적 이해와 실천 과정에서 부족했던 것을 이제 저자를 만나 비로소 채우게 된다. 저자의 설명을 듣지 않는다면 맹자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곡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 맹자가 실로 지기를 제대로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 맹자 사상의 심성 수양적 근거를 밝히다

한 인간이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구하고자 나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말재주나 뽐내고 밥 먹여 줄 땅이나 구하기 위해서라는 세인의 오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뜻을 지키는 의지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심지어 거둬 줄 사람 없는 들개로 취급받기까지 했던, 오늘날에는 성인이나 아성으로 그럴듯하게 불리지만 당대에는 쓸쓸하고 처량하기 짝이 없던 이들을 움직인 진정한 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맹자가 유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널리 알려진 바다. 공자는 유가 사상의 창시자이고 맹자는 유가 사상의 집대성자라는 것. 맹자가 드높인 정치사상과 인성론도 알려진 그대로다. 덕으로 사람들을 감화시켜 인의를 실천하는 왕도 정치와 인간 심성에는 사단이라는 선함을 본래부터 갖추고 있다는 성선설이 그것이다. 여기에 부동심과 호연지기로 표현되는 수양론을 밝힌 것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맹자가 이런 사상을 갖추게 된 실제적인 바탕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성취했는지, 그것이 어떻게 승화되어 외적으로 쓰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불충분했다. 아니, 실제적인 수양에 대한 탐구는 유학의 일반적인 가르침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남회근이 해설하는 『맹자』는 그런 점에서 특별하고 귀하다. 이 책은 기존의 고전 읽기에서 보아 온 『맹자』가 아니다. 어려운 한문 자구에 대한 시시콜콜한 해석이 아니며 그렇다고 중국 사상사에서 맹자가 어디에 위치하고 맹자의 의의는 무엇인지를 다룬 것도 아니다. 『맹자』에 대한 전통적 해석의 초점은 심성 수양과 왕도 정치의 실현에 있지만 왜 수양이 왕도의 본질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명확하지 않았다. 남회근이 해설한 이 책은 그 점을 설파한다.
『맹자와 공손추』는 중국 사상과 문화의 저변을 흐르는 심성 수양의 근거를 밝힌다. ‘호연지기’와 ‘부동심’으로 표현되는 심성 수양, 즉 ‘기(氣)’를 기르는 것이 중국 사상의 핵심인 내양외용(內養外用)에 이르는 출발이자 그 내용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신의 내적 학문과 수양을 충실히 하면 왜 성현의 길을 가게 되는지, 그것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고 대업에 이르게 되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부동심은 왕도 정치에 이르는 기반이다

「공손추」 편은 제자 공손추가 스승 맹자에게 공을 이루고 명성을 얻었을 때 마음이 동요되는지 동요되지 않는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에 맹자는 나이 사십에 이미 부동심하게 되었노라고 말하는데, 맹자가 여기서 제기한 ‘부동심’은 이후 중국 문화에서 학문을 논하거나 수양을 다룰 때 큰 영향을 끼쳤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 부동심인가. 맹자의 정치 철학인 왕도에 이르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부동심에 이르지 않고서는 나라 일을 맡아 세상에 나서는 것은 고사하고 심신 수양의 기초도 다질 수 없기 때문이다.

부동심은 결코 무정(無情)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정(私情)이나 감정에 얽매이지 않아서 심경이 차분하고 이지(理智)가 청명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내성외왕’의 길에 들어설 수 있고 공의를 위해 또 국가를 위해 천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바칠 수 있습니다.

부동심은 사상과 의지가 동요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부동심에 이르려면 반드시 기를 길러야 한다. 맹자는 기를 기르는 양기(養氣) 문제에서 ‘심’과 ‘기’가 한 몸의 양면이라고 했다. 그래서 심리와 생리는 상호 영향을 미치지만 심리가 ‘주’가 된다. 하지만 ‘생리’ 또한 ‘심리’에 영향을 주니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여기서 맹자가 공손추에게 준 결론은 부동심을 기르는 방법이 바로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는 것이다. “호연지기는 큰 기가 충만하다는 것”으로, 이는 실제적인 경계를 가리킨다. 요약하면 기를, 그것도 수행하면서 얻어지는 기를 기르는 것으로, 이것이 맹자의 진짜 수련이다.

호연지기는 단순히 삶의 태도가 아니다

이 책의 장점 하나는 남회근의 다른 저술이나 강의와 마찬가지로 저자의 개인적 체험이 깊고 넓게 녹아 있다는 점이다. 개인의 수행 체험을 기초로 해서 『맹자』 강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마도 이 외에는 찾기 힘들 것이다. 대개는 유학사의 입장에서, 유학 철학의 관점에서, 혹은 정치 사상사의 측면에서 맹자를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충분할까.
맹자가 “나는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고 했을 때, 그 ‘호연지기’를 누가 말할 수 있었을까. 호연지기를 잘 기름으로써 자신을 잘 닦고, 자신을 부동심에 이르게 한 다음에야 세상을 바라보고 참여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밝힌, 그 실제 체험의 경계를 여기 『맹자와 공손추』에서는 볼 수 있다.
기존의 『맹자』 해설서에는 그저 호연지기가 무엇인지 개념 설명에 그치고 말았기에 이런 점이 부족했다. 실제적인 경지로 ‘의지’와 ‘사상’이 나온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양심(養心), 양성(養性), 그것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기를 기르는 방법에서 비교적 추상적인 원칙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기’는 ‘의(義)’와 ‘도(道)’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는 의리이고, ‘도’는 형이상적 도리를 가리키지만 동시에 형이하적 길이나 궤도를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 말은 방법이 있어야 하고 궤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만약 의와 도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 기는 ‘굶주리게’ 되어 잘 길러지지 않으며 천지 사이에 꽉 찰 수가 없습니다.
맹자는 다시 한층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 기는 “의를 쌓아서 생겨나는 것[集義所生者]”이니, 모든 ‘의리’(원리)를 꿰뚫어 알고 거기다 철저히 실행한 이후에야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수행만 기준하더라도 실로 여느 책에서도 보기 힘든 이치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수행 지침은 양(養)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의(義)에 대해서도 관심을 멀리한다. 선(善)을 행하는 이치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러나 맹자는, 호연지기는 수행과 수양, 그 두 가지를 통해 얻게 되는 것으로 그 이치는 세간을 물리치는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간에 대한 인의(仁義) 없이는 오히려 얻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렇듯 호연지기는 단순히 삶의 태도가 아니라 수양의 결과 얻을 수 있는 실제 경계라는 것이 드러난다.

왕도 정치는 신념이나 이론이 아니다

먼저 저자 남회근이 이 책의 핵심을 말한 대목을 보자.

『맹자』 전서의 사상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데, 후대 유학자들이 낱낱으로 경계를 그어 버린 데다가 우리 자신의 부주의까지 더해져서 우리는 전서를 일관되게 읽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내성외왕’의 수양 방법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내성외왕’은 요즘말로 하면 ‘내양외용(內養外用)’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떻게 자신의 내재적 학문과 수양을 충실히 해서 성현의 길을 걸어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는 대업에 종사할 것인지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대에 표방하던 ‘성현지로(聖賢之路)’이니, 인격의 완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내재적 학문과 사상의 수양에서 말미암되 나아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외재적인 사업에까지 능력을 발휘하는, 그것이 바로 성현의 이치인 것입니다. (...) 이른바 ‘성현’이란 단지 내적 수양이 승화되어 외적 운용과 잘 융화된 사람일 뿐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내성외왕의 논리와 수양의 실제를 깊이 있게 체득하지 못하면 동양문화의 정수를 놓치기가 쉽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고전을 하나의 수미일관된 체계로 읽기를 권한다. 그래야 공손추가 첫머리에 공을 이루고 명성을 이루었을 때 과연 마음이 동요되는지 동요되지 않는지를 묻는 데 대한 답의 핵심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지를 잘 잡고 그 기를 포악하게 하지 말라[持其志 無暴其氣]”는 구절은 수양의 최고 원리로서 맹자가 제시한 것인데, 그 말도 논리와 전체 체계 속에서 보아야 비로소 이해된다. 마음은 기를 통해서 길러지고 기는 심리 작용에 따라 변화를 일으키니, 왕도 정치의 주창자로서 중국 정치사상의 한 축을 이룬 맹자가 그의 사상이 집약된 『맹자』 속에서 수행의 방법을 일러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맹자와 공손추』가 『맹자』 중에서 핵심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유학의 일반적인 가르침 속에 이런 실제적인 수양, 수행이 사라진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왕도 정치는 신념이나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신념이나 이론에서 얻어지는 것은 파편적이고 표피적일 뿐이다. 맹자의 정치사상인 왕도 정치가 나오게 된 기반을 알지 못하면 모든 개념이 따로 놀게 된다. 그것이 오늘 남회근 선생의 강의가 실로 기꺼운 이유다.
이처럼 대장부니 호연지기니, 민주주의니 왕도 정치니 말하지만 이것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맹자』 해석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다. 부동심-양기 수련-호연지기-왕도 정치-성인의 길(인격 완성)에 이르는 실제적인 수양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지 못하였기에, 형이상학적인 것(본성을 다룬 이학)과 형이하학적인 수련이 역사에서는 뒤섞여 버렸던 것이다.

― 경사합참, 맹자 또한 시대의 산물이다

고전 읽기를 강조하는 시대지만 고전은 여전히 따분하고 현실감이 없다. 설명을 듣지 않으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지식이 쌓이고 나이가 들고 거기다 세상살이 경험과 안목이 생겨야 고전을 조금이나마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열국을 주유하며 자신의 정치 이상을 군주들에게 유세하던 이 책의 주인공 맹자만 보더라도 그렇다. 자칫 정치가로서 한자리 차지하려 온갖 수모를 마다하지 않는 모습으로 곡해 받을 수도 있는 터이다. 또 『맹자와 공손추』에서는 아성이라는 수식이 무색할 정도로 맹자의 다소 생뚱맞은 모습이 곳곳에 그려진다. 제왕이 부르는데도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는가 하면, 이를 염려해 억지로 조정에 보내려는 제자를 피해 달아나기도 한다.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제나라를 떠날 때는 아쉬운 듯 미적거리고, 정작 자신을 만류하러 달려온 사람에게는 면전에서 돌아누워 무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럴 때 맹자의 깊은 뜻을 알아주고 처한 상황을 제대로 살펴 내는 지기가 있다면 온전한 모습의 맹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저서에서 드러났다시피, 시대 상황 즉 역사와 경전을 함께 탐구해 체득하는 남회근의 경사합참 방식의 고전 읽기는, 맹자가 자신을 알아주는 지기를 만난 것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맹자라는 인물과 시대적 상황을 폭넓고 깊게 그리고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길을 열어준다.

― 수양은 끊임없는 실천이다

저자는 맹자가 말한 인간의 마음에는 선함을 본래부터 갖추고 있다는 사단을 설명하면서, 그렇더라도 그것을 기르고 넓히고 채우지 않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을 통해 일상에서 말과 행동으로 실행할 것을 강조한다. 이는 불가에서 말하는 가행(加行) 즉 가공수행(加工修行)과 같다는 것이다.
또 “기술을 선택함에 있어서 삼가라”는 맹자의 말을 빌려, 비록 직업 심리로 개인의 인함과 잔인함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반복적으로 행하는 일 처리나 대인 관계 같은 것이 인간 심리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므로, 생활이 곧 마음을 수행하는 실천의 장임을 강조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맞고 어떻게 하는 것이 틀린 것인지 자신의 마음과 밖으로 드러난 행위를 수시로 반성하고 수시로 수정하라는 것으로, 이는 맹자의 말이자 저자의 말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이 정좌 수도를 하는 것은 수행의 입문 방법과 연습에 불과한데, 불가에서 말하는 ‘극념(克念)’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극복한 다음에 정좌 수도를 하면서 생각을 변화시켜 갑니다. 그런 후에 점차 확충시켜야 비로소 자신의 각종 심리 행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만약 심리 행위를 변화시키는 공력과 지혜가 없다면 일체의 수행이 모두 헛소리요 공염불이니, 앞에서 언급했던 관휴(貫休) 스님의 시 “마음 수양이 무심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천이고 만이고 모두 물 따라 흘러갈 뿐이지[修心未到無心地, 萬種千般逐水流]”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맹자가 후천적인 학문 수양을 대단히 중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네 가지 심리 행위를 넓히고 채우지 못한다면, 사람 노릇에 있어서 최소한의 조건조차 해낼 수 없습니다. 즉 자신의 부모에게 다해야 하는 효도조차 해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이 사단을 어떻게 넓히고 채워야 합니까? 그것은 각자에게 달렸습니다. 사실 일상생활 가운데서 언제 어디서든 말과 행동으로 실행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고금 이래로 상세히 열거한 사람이 없으므로 자기 자신의 지혜로 체득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맞고 어떻게 하는 것이 틀린 것인지 자신의 내심(內心)과 외재적인 행위를 수시로 반성하고 수시로 수정해야 합니다.

― 유가 불가 도가의 심성 수양을 융회하다

저자는 맹자의 양기 문제를 다루면서 인접한 불가, 도가의 용어나 개념을 빗대어 설명한다. 이로써 유불도 삼가의 수행법을 비교해 같은 부분과 다른 점을 드러낸다. 유불도를 융회 관통하여 이치를 설명하는 방식은 저자 말을 직접 듣는 게 가장 나을 듯하다.

“외물을 대하여 무심함”도 좋고 ‘부동심’도 좋지만, 잠시 고개를 돌려 일반적으로 불학을 배우고 수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정좌하면서 “망상이 없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저 명성도 대단한 선종의 육조(六祖)들도 일찍이 선종은 ‘무념(無念)’을 종지로 삼는다고 표방했습니다. 무엇을 ‘무념’이라고 할까요? 바로 잡념이 없고 망상이 없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맹자의 ‘부동심’과 똑같지 않습니까? 그들의 함의는 서로 같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꼭 같지는 않습니다. 맹자의 ‘부동심’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을 대하고 외물을 접함에 그 중심이 있습니다. 굳이 말한다면 불학에서 ‘사리무애(事理無?)’의 초기 단계라 하겠습니다.

이 호연지기라는 것은 비할 바 없이 크며 양명지기(陽明之氣)로서 강하고 힘이 있어 흔들거나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또 밝게 빛나고 생기발랄합니다. 불학의 용어로 말한다면 무량무변(無量無邊)하며 원명청정(圓明淸淨)합니다. 물론 맹자가 살던 시대는 아직 불학이 중국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비유를 사용해서 설명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어떤 사람은 『맹자』를 여기까지 읽고서 여기에서 말하는 ‘심(心)’이 불가에서 말하는 이른바 청정 본연의 본성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서로 연관 지을 수 없는 별개의 것입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것은 형이상적 본체이고, 맹자가 여기에서 말한 것과 유가의 성선(性善) 과 성악(性惡)의 논의는 형이하적 후천지성(後天之性)입니다. 후세 유학자들은 하나같이 형이상적 본체지성(本體之性)과 형이하적 후천지성을 한데 섞어 버려서 둘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없습니다.

ㅡ 책속으로 추가 ㅡ
다른 종교들은 비록 생사(生死) 양면을 모두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최후의 결과를 들어 보면 사후의 일면에 더 치중합니다. 오직 중국 문화만이 생(生)의 일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생겨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오직 사의 측면에 서서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연기라는 학설 체계도 생의 일면에 서서 인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137쪽)

어려움이 어디에 있는 걸까요? 바로 장자가 말했던 것이기도 한데, “성인의 자질은 지니고 있어도 성인의 도가 없으면[有聖人之才, 無聖人之道]”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인의 도는 지니고 있어도 성인의 자질이 없으면” 마찬가지로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대성인은 반드시 성인의 자질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성인의 도 역시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 이것은 불가에서 말하는 ‘근기(根器)’이기도 합니다. (203쪽)

현명하고 덕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재능을 지닌 것은 아니며, 재능 있는 사람이 전부 다 현명하고 덕을 지닌 선비인 것은 아닙니다. 이는 동서고금 인재들의 지력(智力)의 차등이니 절대로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중산 선생도 말하기를 지(智), 현(賢), 우(愚), 불초(不肖)는 등차(等差) 평등이라고 했습니다. 이른바 등차는 나란히 세워 두고 함께 논할 수 없음이고, 평등은 기본적 인권에 근거한 평등입니다. 맹자가 말한 요점을 잘 이해하면,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를 선택한다”는 이치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똑같이 여겨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이 현명하고 능력 있다고 함부로 생각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227-228쪽)

우리가 역사를 보면 ‘영명한 군주[明君]’도 별로 없지만 ‘능력 있는 신하[能臣]’ 역시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이 ‘자리만 채우는 신하[具臣]’입니다. 자리만 채우는 신하란 자리를 차지하고서 거드름이나 피우는 사람을 말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도통 뭔가 하려고 들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많이 하면 틀리는 것도 많으니 하지 않으면 틀릴 일도 없다는 식이지요. 결국은 하지도 않고 틀리지도 않는 편에 섭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잘할 수 있는 사람은 하려고 들지 않고, 하려고 드는 사람은 잘할 줄 모르니 결과가 어떻겠습니까! (230쪽)

자기의 운명을 진정으로 바꾸고자 한다면 다른 힘에 기댈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나 부처님 혹은 보살에게 기댈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해야[自求多福]” 합니다. (...) 자기 자신을 엄격하게 살펴서 원인을 찾아내는 그것이 바로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길입니다. 만약 스스로를 먼저 반성하지 않고서 사회를 원망하고 친구를 원망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도리어 스스로 화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236쪽)

오로지 인자하기만 해서는 국가 정치를 잘할 수 없고, 오로지 법치만 중시해서는 자기 자신이 달아나려고 해도 빠져나갈 길이 없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의사의 말만 들으면 밥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고, 변호사의 말만 들으면 길도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없으며, 불가의 말만 들으면 사람 노릇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245쪽)

인성의 심리 행위를 확대시켜서 말해 보면, 마음이 일어나고 생각이 움직여 그것이 정치에 표현되면 정책을 좌우하고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범위를 축소시켜서 말해 보면, 모든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 겉으로 표현되는 심리 행위의 작용이며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칩니다.(265쪽)

사람은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人皆有不忍人之心].” 이 말은 상당히 독단적이라서 예전에 우리도 회의를 품었는데, 대체적으로 그럴 따름이지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무릇 사단을 나에게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두 손 들어 찬성합니다. 이 말에 상반되는 주장은 바로 어떤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어쩌면 사단을 지니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사단을 지니고 있지만 정도에 있어서 경중의 차이가 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는 말합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인식해야 합니다. 무릇 사단을 자기 자신에게 지니고 있는 ‘사람’은 수행과 수양의 과정에서 자신의 선량한 심리를 잘 기르고 그것을 확충시켜야 합니다. 만약 기르고 확대시킬 줄 모른다면 그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불학을 배운 사람들은 말끝마다 자비를 들먹이는데, 실제로는 자비심을 기르고 확대시키지 않습니다. 유가로 말한다면 수양이 불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276-277쪽)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본래부터 선한 마음이 있는데, 그것은 마치 불빛이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여러분이 그 불빛을 밝고 크게 만든다면 큰 광명으로 변할 것입니다. 또 샘물과도 똑같아서 샘의 근원을 크게 넓히고 수로를 정비한다면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나올 것입니다. 이러한 자(慈), 비(悲), 희(喜), 사(捨)를 확대시키면 인의예지의 수양, 네 가지 심리 행위가 커집니다. (278쪽)

나무가 크면 바람도 많은 법이므로 “인간 세상은 도처에 좋고 나쁨이 공존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일이 다 그렇습니다. 한쪽으로 얻는 것이 있으면 다른 한쪽으로는 잃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생에게 『장자』를 펼쳐 도양열의 풍격을 보고 그의 겸허함을 본받으라고 권했습니다. 인간 세상의 공명(功名)과 이록(利祿), 훼방(毁謗)과 책난(責亂)은 모두 허공의 뜬구름과 같아서 흘러가 버립니다. 그리고 모두 진실이 아닙니다. (336쪽)

[책속으로]
지도자가 자신의 고위 간부를 믿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고위 간부라고 해서 지도자가 그 정도로 신임할 만한 걸까요? 고위 간부라고 해서 충성심, 재주, 품성, 능력 등등 구비해야 할 조건들을 다 갖추고 있을까요? 사실 그렇게 우수한 인재는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24쪽)

만약 “마음 수양이 무심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이런 깨끗한 경치도 수심만 더할 뿐이니, 아무리 수행한들 모두 헛것이 되어 “천이고 만이고 모두 물 따라 흘러갈” 것입니다. 이 두 구절이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바는 이러합니다. 개인의 수행이 부동심이라는 무심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이 파도를 따라 흘러가 버리고 말할 가치도 없게 됩니다. (45쪽)

맹자가 대답한 ‘부동심’은 도대체 그 이치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간단합니다. 맹자 당시의 대답은 심리 행위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지를 굳게 정하고서 동요하지 않는 ‘부동심’이지, 결코 무슨 무사무려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등의 심성 수양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여기 맹자의 ‘부동심’과 생각을 물리치고 욕망을 억제하는 수련을 한데 끌어다 놓는 것을 맹자가 알면 아마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54쪽)

뜻이 나약해지면 기가 허해져서 스스로 창피한 일이 생각나고 얼굴이 붉어지는데, 이것은 원기가 허해졌기 때문입니다. 지가 소멸되면 기도 따라서 부족해지므로, 칼을 대려는 생각만 해도 안색이 변합니다. ‘암을 두려워하는’ 심리적인 병이 생기면 사람은 말라 갑니다. 그러므로 기는 지의 부속품이며, 기를 생산하는 원동력은 의지입니다. (82쪽)

유가의 수양을 이야기하는 사람 및 불학을 배우거나 도를 수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부좌한 채 눈을 감고 수련을 하다가 정신이 맑고 고요해지면 스스로 ‘부동심’에 이르렀다거나 ‘무망상’에 이르렀다고 착각하는데, 사실은 바로 “물결은 파도 중심에 있을 때 평온함을 느낀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도를 수양하겠다는 큰 망상을 품고 있어서 마음이 마구 동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03쪽)

시간과 환경의 시련을 겪어 보지 않고서 한 사람의 인품과 수양을 단언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이는 공자도 말한 바가 있습니다.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함께 도에 나아갈 수는 없고, 함께 도에 나아갈 수는 있어도 함께 설 수는 없고, 함께 설 수는 있어도 함께 권력을 가질 수는 없다[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 제 일생의 경험만 가지고 보더라도 공자의 이 말에 대해 체득하는 바가 깊습니다. (109쪽)

마음과 생각을 하나로 모으면 신체에 영향을 미쳐 생리 기능이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쏟아 책을 볼 때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이 들리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생리 역시 심리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은 병이 나면 정서가 불안해지고 생각도 더 예민해지거나 혹은 둔해집니다. 그러므로 기를 수양해서 하나로 모으면 의지를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116쪽)

[목차]
옮긴이 말 5

공손추 상 11

관중의 고사 15|관포지교 19|생사를 뛰어넘는 지기의 지극한 정 22|역사의 흥망성쇠 25|시세, 기운, 성공 33|본디 재주와 운명은 서로를 방해하나니 37|부동심의 철학 42|나근계의 부동심 49|동심과 부동심 54|정신을 깨끗이 씻으면 마음은 절로 편안해진다 61|무협 수련의 부동심 68|길은 달라도 이르는 곳은 같은 문무의 수양 75|수양 철학상의 변증 80|지가 한결같으면 기를 움직인다 86|오직 큰 영웅만이 본래 모습을 지닐 수 있다 91|교파 다툼의 동심 93|마음이 원하는 바를 좇는 부동심 100|하나를 오로지하면 만사가 끝???104|기를 기르는 수련 110|이기불이론 112|호연지기 118|호연지기와 정기가 121|심과 기를 하나로 꿰뚫다 126|도가의 연기 132|마음을 다스림과 기를 기름 139|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기를 고요하게 함 142|맹자의 기를 기르는 심법 151|쑥이 마 속에서 자라면 붙잡아 주지 않아도 스스로 곧아진다 156|양기에 관한 한담 160|언어로 사람을 판단하는 방법 167|학행의 전형에 관한 토론 174|성인은 스스로를 옳다 여기지 않는다 176|크도다 공자여 181|당 명황과 공자 190|공자 외전 198|소왕의 도덕적 귀감 218|맹자의 시론 219|현능과 직위의 정의 224|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를 선택함에 관한 또 다른 장 227|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다 231|업은 마음에서 만들어지고 명은 하늘로 말미암지 않는다 235|역대 군주제의 심법 240|한 선제에 대한 논평 245|맹자의 재정 경제 관념 251|숭정이 어찌 매산에 오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258|불인심의 문제 264|사단으로 말미암아 성선설을 보다 270|일상생활에서 사단을 실천하다 279|수행은 쉬우나 뜻을 오로지하기는 어렵다 286|성현의 인격 분류 292

공손추 하 299

천시, 지리, 인화 302|맹자의 태도 307|주고받음의 예법 328|목민의 직책 337|직책과 언책 344|의심하면 기용하지 않고 기용하면 의심하지 않는다 351|장례의 변천 355|곧은 도를 가지고 사람 노릇 하기란 어렵다 361|문벌, 재벌, 학벌 372|처세의 예술 380|오백 년마다 반드시 영웅이 나온다 391

[저자소개]
저자 : 남회근

저자 남회근은 1918년절강성온주에서태어나어릴때부터서당교육을받으며사서오경을읽었다. 17세에항주국술원에들어가각문파고수들로부터무예를배우는한편문학, 서예, 의약, 역학, 천문등을익혔다. 1937년중일전쟁이발발하자사천으로내려가장개석이교장으로있던중앙군관학교에서교관을맡으며사회복지학을공부하였다. 교관으로일하던시절, 선생에게큰영향을준스승원환선을만나삶의일대전환을맞는다. 1942년 25세에원환선이만든유마정사에합류하여수석제자가되었고, 스승을따라근대중국불교계중흥조로알려진허운선사의가르침을배웠다. 불법을더깊이공부하기위해중국불교성지아미산에서폐관수행을하며대장경을독파하였고, 이후티베트로가서여러종파스승으로부터밀교의정수를전수받고수행경지를인증받았다. 1947년고향으로돌아가절강성성립도서관에보관되어있던문연각사고전서와백과사전인고금도서집성을열람하고, 이후여산천지사곁에오두막을짓고수행에전념하였다. 전쟁이끝난후 1949년봄대만으로건너가문화대학, 보인대학등과사회단체에서강의하며수련과저술에몰두하였다. 1985년워싱턴으로가서동서학원을창립하였고, 1988년홍콩으로거주지를옮겨칠일간참선을행하는선칠모임을이끌며교화사업을하였다. 1950년대대만으로건너간후부터일반인과전문가를대상으로유불도가경전을강의하며수많은제자를길렀고, 강의내용을바탕으로 40여권이넘는책을출간하여동서양많은독자로부터사랑을받아왔다. 선생의강의는유불도를비롯한동양사상과역사에대한해박한지식, 깊은수행체험에서우러나오는엄중한가르침, 철저히현실에기초한삶의자세, 사람을끌어당기는유머를두루갖춘것으로정평있다. 2006년이후중국강소성오강시에태호대학당을만들어교육사업에힘을쏟다가 2012년 9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역자 : 설순남

역자 설순남은 서울대학교중문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석사및박사학위를받았다. 북경사회과학대학원에서방문학자자격으로수학했으며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결대학교등에서강의하였다. 저서로『황준헌시선』이있고, 옮긴책으로『노자타설』『알기쉬운대학강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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