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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3079..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정찬주장편소설) (해외배송 가능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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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서적 3079..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정찬주장편소설)

저자 : 정찬주
출판사 : 김영사 
발행일 : 2013. 09. 30
페이지수/크기 : 300쪽 |143 * 210 mm
ISBN-10 : 8934964553 | ISBN-13 : 9788934964551

[책소개]
정찬주 장편소설『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 조선독립을 위해 중국혁명에 뛰어든 조선인 전사들과 모택동의 운명적 만남, 비밀스러운 막후 실력자 주은래와의 뜨거운 우정, 김성숙과 중국인 아내 두군혜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암흑의 독립운동사, 거대한 스케일의 중국혁명사가 구도소설가 정찬주의 손끝에서 사랑과 혁명의 대서사시로 만난다.

[출판사 서평]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붉은 승려 김성숙이었다!” -《아리랑》의 혁명가 김산
중국 대륙에서 치열하게 투쟁했던 조선인 전사들의 《아리랑》이
구도문학가 정찬주의 손끝에서 사랑과 혁명의 대서사시로 생생하게 부활한다!
뜨거웠던 광저우봉기의 주도자로서 붉은 승려라 불렸던 김성숙, 《아리랑》의 전설적인 주인공 김산, 거침없는 테러 투쟁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의열단원 오성륜,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하여 중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천재 음악가 정율성…… 조선독립을 위해 중국혁명에 뛰어든 조선인 전사들과 모택동의 운명적 만남, 비밀스러운 막후 실력자 주은래와의 뜨거운 우정, 김성숙과 중국인 아내 두군혜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암흑의 독립운동사, 거대한 스케일의 중국혁명사가 구도소설가 정찬주의 손끝에서 사랑과 혁명의 대서사시로 생생하게 부활한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붉은 승려 김성숙이었다!” -《아리랑》의 혁명가 김산
조선인 전사들의 《아리랑》이 구도문학가 정찬주의 손끝에서
사랑과 혁명의 대서사시로 생생하게 부활한다!

결코 물속의 소금처럼 사라지지 않으리
1927년 12월 11일 광저우 새벽하늘에 불꽃이 터져 올랐다. 장제스의 상하이쿠데타에 대한 중국 민중들의 대반격, 광저우봉기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광둥꼬뮨은 장제스 군대와 군벌에 의해 3일 천하로 파국을 맞게 된다. 광둥꼬뮨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혁명 전선에 뛰어든 김성숙, 김산(장지락), 오성륜 등 수많은 조선 전사들이 있었다. 이 책은 광저우봉기의 주도자이며 김산의 사상적 스승이었던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 김성숙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중국 민중들을 형제처럼 사랑하면서도 “조선 혁명가들은 결코 물속의 소금처럼 중국 혁명 속에서 사라질 수 없다”고 절규했던 김성숙과 젊은 그들. 아직까지도 암흑의 장막 속에 가려져 있는 수많은 조선인 전사들에 대한 추모이며, 누구도 기억하려 하지 않았던 한 혁명가의 이름을 역사의 석판 위에 새기려는 진실의 기록이다.

거대한 대륙적 스케일에 담아낸 조선인 전사들의 사랑과 혁명
제국주의의 발톱이 전 세계를 움켜쥐고 있던 20세기 벽두, 조선의 독립은 요원해 보였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구슬픈 아리랑을 부르며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간도로, 상하이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반도의 밖에서 조선의 해방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소설은 조선에서 승려 생활과 함께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1923년 26세의 나이로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아나키스트와 민족주의 혁명가로 활동했던 김성숙의 삶의 궤적을 쫓아간다. 반도와 대륙을 넘나드는 거대한 스케일을 품은 소설은 철저한 자료 고증을 통해 당시 풍운의 무대를 직접 누비는 듯한 현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긴 호흡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속도감 넘치는 문장으로 조선인 전사들의 삶의 굴곡을 세밀하게 포착해낸다. 주인공인 김성숙 외에도 《아리랑》의 전설적인 혁명가 김산, 거침없는 테러 투쟁으로 일본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의열단원 오성륜,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하여 중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천재 음악가 정율성 등 조국의 새벽을 열고자 고군분투했던 전사들의 삶이 씨줄로, 조선 혁명가들과 모택동의 운명적 만남, 비밀스러운 막후 실력자 주은래와의 뜨거운 우정, 김성숙과 중국인 아내 두군혜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날줄로 감겨든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암흑의 독립운동사, 거대한 스케일의 중국 혁명사가 구도소설가인 저자의 손끝에서 사랑과 혁명의 대서사시로 부활한다.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역사는 아무리 /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어도 좋다.” 시인 김수영이 1970년대의 암울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과 민족에 대한 정체성을 깨달으며 노래했던 절창이다. 2013년 지금 우리는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가? 더러운 역사가 아니라, 치열하면서도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증명했던 역사마저 ‘너무나 급진적인 이념의 산물’이었다며 백안시하고 있진 않는가? 엄혹한 시대에 조국의 여명을 맞이하기 위해 불꽃처럼 산화해간 치열했던 민족혼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진 않는가? 조국이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기억 속에서 지웠던 그 민족혼들을 복원하고 역사의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할 때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별첨 운암 김성숙의 생애에 대해

1916년 김성숙은 중국으로의 망명을 결심하고 집을 떠났다. 봉천으로 가기 위해 원산, 청진을 거쳐 두만강을 건너려 했지만 국경수비대의 삼엄한 경계에 막혔고, 기회를 엿보던 김성숙은 시절인연에 끌려 용문사에서 불가에 입문한다. 법명은 태허太虛, 허공이라는 의미였다. 월초선사의 뜻을 받아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지독한 고문을 견뎌냈다. 이후 김성숙은 무산자동맹회와 조선노동공제회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벌여나간다. 무산자동맹회는 국내 유일의 사회주의 운동단체, 조선노동공제회는 한국 최초의 전국적인 노동운동단체였다.
1923년 드디어 베이징으로 건너간 김성숙은 아나키스트로 변신하면서 테러 조직 의열단에 입단하고, 일제에 저항하기 위한 ‘협동전선의 필연성’을 외치며 잡지 [혁명]을 발행한다. 리다자오 등 중국 유명 좌파 인사가 필자였고 국내와 시베리아, 캘리포니아와 유럽까지 퍼져나갈 정도로 영향력을 컸지만, 한글을 인쇄하는 시설이 없어 모든 글을 손으로 써 석판 인쇄를 하며 밤을 지새워야 했고 실명의 위기를 겪었다.
1927년 항일투쟁 이론가로 거듭난 김성숙이 혁명 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분투하던 때, 장제스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앙드레 말로가 《인간의 조건》에서 생생하게 묘사했던 그 상하이쿠데타였다. 중국 혁명가들과 조선인 전사들은 이에 맞서 광저우에서 봉기를 일으키고 광둥꼬뮨을 건설한다. 《아리랑》의 혁명가 김산, 냉철한 테러리스트 오성륜, 전설적인 명사수로 이름을 떨쳤던 이용과 박진, 박근만과 박근수, 김은혁 등이 뜨거웠던 광저우봉기에 참여했던 조선 전사들이다. 그러나 수많은 혁명가들의 목숨을 희생하면서 건설되었던 광둥꼬뮨은 장제스 군대와 군벌, 영미제국들의 탄압에 의해 3일 만에 허망하게 무너진다. 피의 학살이 이어졌고 중산대학 학생들만 200명 이상이 처형되었다. 국제혁명의 심장부 코민테른으로부터 날아온 소식은 “모험주의에 경도된 무모한 봉기”라는 비판뿐이었다. 김성숙은 중국의 공산혁명을 위해 죽어가는 수많은 조선인들을 보면서 국제주의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졌다.
중국 대륙 곳곳에서 장제스 일파의 백색 테러가 자행되었다. 생존 자체가 승리인 시대였다. 혁명을 위해 하이루펑으로 간 김산과는 달리 상하이를 선택한 김성숙은, 조선독립투쟁의 모든 역량을 하나로 집결시키고 모든 군사 조직들을 광복군 체제 아래 둘 것을 역설하며 상하이임시정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것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승만의 반소 활동을 격렬하게 비판하며 면직을 요구했지만 결국 좌절되고 말았고, 훗날 자유당 정권 하에서 간첩의 누명을 쓰는 악연으로 이어졌다.
1945년 조국이 해방되었지만 외세에 의한 해방은 더 가혹한 고통이었다. 해방 조선에서는 이승만 등 친미파가 득세했고 친일파들이 다시 권력을 장악했다. 김성숙은 미군정을 비난했다는 명목으로 수감되었고, 중국에 두고 온 아내 두군혜는 아들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거리를 전전하다가 밤이 되면 몰래 병실로 들어와 밤을 새웠다. 많은 동지들이 이북으로 건너갔지만, 친소와 친미가 아닌 민족 자주를 열망했던 김성숙은 남한을 선택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고, 공화당의 요직을 회유받는 정치 도구로 전락한 말년의 김성숙. 그에게 남은 것은 옛 동지들이 지어준 오두막 피우정뿐이었다. 피우정避雨亭, 비나 겨우 피하는 집. 1969년 4월 김성숙은 그곳에서 천식을 앓으며 죽어갔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아니,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었다

[목차]
1장
쓸쓸한 죽음
비를 피하는 집
화장하지 말라

2장
용문사 빗자루
지피지기
사람이 하늘이다
서대문형무소
벙거지와 누비장삼

3장
금강산으로 가리라
운허와 태허
금강산

4장
베이징 유학
분노
젊은 지도자
폭탄이 되라
조선의열단

5장
혁명의 땅
황포군관학교
중산대학
생무
혁명과 사랑

6장
이육사 첫 시
조선인 전사들
하지 못한 키스

7장
결혼
젊은 손님
이별
민족, 그리고 민족

8장
연극 [안중근]
연날리기
해방 전후

9장
폭설


작가후기

[책속으로]
청년 사미승은 10여 명의 강원 학인들 중에서 일어 실력만큼은 가장 앞섰다. 강원 생활 4개월 만에 일어 원서를 읽고 학인들 앞에서 일어로 연설할 정도였다. 월초가 강원 졸업 며칠 전 일어 특별 시간을 마련해 자신과 구면이자 불교중앙학림 강사인 하야카와 케이조를 부른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역시도 발군인 청년 사미승의 일어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1917년 7월 15일. 월초는 강원 사미과 제 1회 졸업식날 밤 아무도 모르게 그를 주지채로 불렀다. 월초는 정식으로 사미과를 마친 그의 손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 나는 너를 사미라 부르지 않고 태허라 부르겠다. 태허란 허공이다. 너는 허공처럼 대장부로 살아야 한다.”
태허는 벌떡 일어나 월초에게 삼배를 했다. 그러나 월초는 태허를 처음 대면했을 때와 같이 고개를 한 번 끄덕했을 뿐 돌부처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지피지기] 중에서

김성숙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31세의 젊은 마오쩌둥을 바라보았다. 넓은 이마에는 야심이 담겨 있었고, 한가운데로 가르마를 탄 검은 머리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행동하는 성격을 암시했다. 시선은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는 것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얼굴 윗부분의 느낌만으로는 그의 면전에서 한마디도 말을 붙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통통한 코와 둥그스름한 입술, 그리고 부드러운 턱 위에 있는 점 등은 다정하고 친숙한 이웃을 연상케 했다. 장지락이 마오쩌둥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한 뒤 김성숙을 소개했다.
“잡지 [혁명]의 주필이십니다.”
“마오쩌둥이라 하오.”
“김성숙이라 합니다.”
마오쩌둥이 손을 내밀었다. 체구에 비해서 작은 손이었다. 김성숙은 부지런한 느낌을 주는 그의 작은 손을 보자 갑자기 친밀감이 들었다. 압도할 것 같은 큰 키와 달리 작은 손은 겸손했다. 김성숙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젊은 지도자] 중에서

어느 날 두쥔후이는 일어 강습이 끝났는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김성숙을 중산대학 강의실 문밖에서 기다렸다. 김성숙도 눈치를 챘다. 문밖에 그림자가 어른거렸고 일어 강습 때 두쥔후이가 자꾸 야릇한 눈길을 보내왔다.
“성숙 씨.”
“무슨 일로 기다리고 있었소.”
“성숙 씨, 일어를 잘하는 비결 좀 가르쳐줘요.”
두쥔후이가 유난히 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가르쳐주지 않으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김성숙은 난감했다.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문장과 단어를 많이 외워야지요.”
“그걸 모르나요.”
김성숙은 두쥔후이를 다독거렸다. 그러나 두쥔후이가 요구하는 것은 정작 다른 데 있었다. 일어 공부를 핑계로 김성숙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자주 갖고 싶어 했다.
“제 마음을 몰라주는군요.”
두쥔후이가 갑자기 교문 쪽으로 뛰어가버렸다. 김성숙은 어리둥절한 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중산대학] 중에서

마침내 광저우봉기가 1927년 12월 11일 동쪽 하늘이 기지개를 켜는 새벽 3시 30분에 터졌다. 혁명 병사, 그리고 노동자와 농민들이 목에 붉은 댕기를 두르고 나섰다. 봉기를 알리는 신호는 컴컴한 새벽하늘에 쏘아 올리는 세 번의 대포소리였다. 봉기군의 전술은 일시에 일본과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와 손잡은 장제스의 국민당 우파 세력들을 섬멸하여 광주를 장악하는 것이었다.
사령부 숙소 기습작전은 전광석화처럼 끝났다. 봉기군의 총소리와 함성소리에 놀란 장파구이 등이 잠옷 차림으로 담을 넘어 줄행랑을 놓았기 때문이었다. 박진이 사령부 숙소를 수색하고 있을 때는 장파구이는 벌써 주지앙강을 건너 도주한 뒤였다. 오성륜은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쿡쿡 찌르면서 허탈해 했다.
장파구이의 사하진과 연당의 부대원은 2천여 명이나 되었지만 새벽에 들이닥친 봉기군의 돌격작전에 방어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무너졌다. 봉기군이 장파구이의 병영을 향해 일제히 사격하자 연병장으로 뛰어나온 30여 명이 순식간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전과를 크게 올린 전투였다.
-[조선인 전사들] 중에서

김성숙이 베고 있던 베갯머리가 축축했다. 푸른 새벽빛이 창을 타고 넘어와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을 알리는 닭 우는 소리에 의식 한 가닥이 또렷해졌다. 간밤 꿈에서 만난 세 아들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항상 마음으로 사랑했던 두쥔후이와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탓이리라. 언제나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 죽기 전에 남북통일만 되면 만날 수 있을 게다.’
멎었던 천식 기침이 다시 터져 나왔다. 김성숙은 찬물로 기도를 진정시켰다. 그래도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진통제는 약봉지 안에 더 이상 없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약국으로 보내 진통제를 사오게 할 수도 없었다. 김성숙의 호주머니 속에는 단 1원도 없었다. 김성숙은 두어 시간 동안 천식 ?

[저자소개]
 저자 정찬주는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글쓰기로 오랜 기간 소설과 명상적 산문을 발표해왔다. 법정 스님은 저자를 재가제자로 받아들여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내렸다. 현재 전남 화순 쌍봉사 옆 이불재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승려에서 항일투쟁 이론가로 변모하면서 중국 대륙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가혹한 고통을 겪으며 죽어간 한 혁명가에 대한 진실의 기록이다. 작가는 반도와 대륙을 넘나드는 거대한 스케일과 역사 속의 군상들을 생생하게 되살린 빛나는 문장으로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던 혁명가의 의지를 독자들의 심장에 각인시킨다. 그동안 저서로 장편소설 《다산의 사랑》 《소설 무소유》 《산은 산 물은 물》 《가야산 정진불》 《하늘의 도》 《다불》 《만행》 《대 백제왕》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 산문집 《부처님 8대 인연 이야기》 《암자로 가는 길》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돈황가는 길》 《나를 찾는 붓다 기행》 《정찬주의 茶人기행》 《뜰앞의 잣나무》, 그리고 어른을 위한 동화 《눈부처》 등을 썼다. 1996년 행원문학상, 2010년 동국문학상, 2011년 화쟁문화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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