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서적 2041..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 때 (성인보다 더 높은 나의 엄마) (송암 지원 저)
저자 : 송암 지원
출판사 : 종이거울
발행일 : 2012.01.13
페이지수/크기 : 397쪽 | A5 | ISBN-10 : 8990562376 | ISBN-13 : 9788990562371
[책소개]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 때』는 부처님의 어머니, 성인들의 어머니, 큰스님들과 평범한 스님들의 어머니를 통해 인간 존재와 그 존재가 펼치는 삶의 근원을 다시 찾는 내용을 다루었다. 부처님마저도 어머니라는 존재 앞에서는 자식이라는 사실이 예외가 아니라는 준엄한 진실을 깨닫고, 성인의 도를 배운 자식들이 과연 어머니를 어떻게 대했는지 살펴본다. 또한 스님들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의견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출판사서평]
1.
출가하여 절에 들어가면 세속과 인연을 끊는다. 세속과 철저하게 관계를 끊을수록 출가생활에 충실하다는 당사자의 생각과 주변의 평판을 얻는다. 그런 속에서 부모에게도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거사님, 보살님’으로 바꿔 부른다.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출가한 자식에게 귀의하는 뜻으로 큰 절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희한한 일이 여태껏 이루어져 왔다.
그러다가 도[배움]가 깊어지고 인생이 깊어지면 은혜를 알게 되고, 자연스레 가장 큰 은혜인 부모를 다시 찾는다. ‘거사님, 보살님’의 호칭에서 ‘아버지, 어머니’로 돌아오는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변함없이 살지 못 하고 왜, 한 바퀴 돌아서야 제자리로 돌아온단 말인가? 이에 한 바퀴 돈 사연을 고금을 떠나 기록을 찾아 만든 책이다.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 때’는 도가 깊어지고 인생이 깊어짐을 뜻한다. 본래의 인간, 그 자리로 돌아옴을 의미한다.
여기에
부처님의 어머니,
성인들의 어머니,
큰스님들과
평범한 스님들의
어머니를 통해
인간 존재와 그 존재가 펼치는 삶의 근원을 다시 찾는다.
2.
목숨 바쳐 귀히 키운 자식을 산으로 떠나보낸 어머니의 마음?
자식은 세상에 무엇이 그렇게 좋아서 자신을 애지중지 키워 준 어머니를 떠나 훌훌 산으로 갔을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비단 누구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추궁하진 않는다. ‘죽음’,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기에…….
이런 관점의 이 책에서는 먼저 부처님의 두 어머니로부터 시작된다. 여긴 부처님마저도 어머니라는 존재 앞에서는 자식이라는 사실이 예외가 아니라는 준엄한 진실이 들어 있다.
그 다음 지리적으로 인도 2명, 티베트 2명, 중국 5명, 한국 10명 이상의 고승들을 통해 그들과 어머니와의 관계를 바라본다. 성인의 도를 배운 자식들이 과연 어머니를 어떻게 대했나를 살피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스님들은 어머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종정이신 법전스님과 고승 세 분을 위시해 그 보다 좀 젊은 8명의 스님들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의견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부록으로 부모은중경을 통해 부모, 특히 어머니에 대한 불교인들의 생각과 전통적인 효의 근거를 살펴본다.
3.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점은, 설령 부처님이라거나 뛰어난 고승이라고 해도 어머니 앞에서는 한갓 아들이고 딸일 뿐이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결국 출가자들도 아들로서 딸로서 어머니에 대한 참회의 마음과 사모의 마음이 있어야 인간의 반열에 든다고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바로 그 지점을 구도의 출발지로 삼고, 그 마음으로 마침내 도를 이룬다는 것을 은연중 말하고 있다.
분명한 점은 어머니와 자식과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고 있다. 훌륭한 어머니 덕분에 장한 자식이 태어날 수 있고 출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 주기도 한다. 어머니가 불교에 대한 신심이 없으면 출가가 어렵기도 하겠지만 설령 출가했다고 해도 그 임무와 소임을 다하기도 어렵다. 어머니와 자식 간에 갖는 서로간의 마음은 결국 자비심의 발로이고, 그 자비심은 종내 일체중생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식과 어머니의 관계는 삶의 원천이다.
4.
불교는 사상성과 신앙성이 동시에 뛰어나다. 사상성만 강조되면 머리의 가르침으로만 한정되고, 신앙성만 강조되면 가슴의 불길로만 한정된다. 그럼으로 출가자가 특출하지 않으면, 불교의 가르침이 온전해지지 않고, 감당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출가자의 특출함이나 그릇의 크기는 사뭇 어머니의 영향이 지대하다.
또 한 가지 적시해야 할 점은 출가자는 산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고, 그 대접을 받는다. 당연히 모든 출가자는 지도자 수업을 충실히 닦아 가야 한다. 그 수업의 첫 걸음이 바로 어머니에 대한 정당한 인식이고 마음자세이며 보은의 효심개발이다. 즉 불심(佛心)이 곧 효심이고, 불행(佛行)이 곧 효행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불교의 지도자교육은 여기서 시작되고 이 점이 근본이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럼으로 부처님과 역대조사나 뛰어난 선지식들의 효심과 효행을 다시 찾아 불교의 바른 면모와 본래자리를 되찾으려고 한다.
5.
성인(聖人)보다 더 높은 법(法)과 동렬인 나의 어머니, 우리들의 어머니!
사람의 인품을 논하되, 대개 보통 사람은 범부이고 더 나으면 차츰 군자, 현인, 성인으로 올라간다. ‘그러면 성인 위에는 누구인가?’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해 보게 된다. 과연 그곳에 누가 있을까? 아무도 없는 빈자리 일까? 그 자리에는 바로 나의 ‘어머니’, 우리들의 ‘어머니’가 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보통의 어머니가 저 아득한 성인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왜, ‘어머니’는 ‘성인’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할까? 성인보다 더 높은 우리들의 어머니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자. 설령 아무리 평범한 어머니라고 할지라도 어머니는 자식을 낳은 뒤 그 자식을 위해서라면 온갖 봉사와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은 늙어서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다. 아니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건다. 죽을 자리라도 사양하거나 피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그런 열성은 이승뿐 아니다. 죽어 저승에 가서도 자식을 위해 오매불망 기도하고 염원할 것이다.
6.
어머니는 자식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도 그랬다.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수정될 때, 바야흐로 자식은 거기에 생(生)을 의탁한다. 자식의 생명[靈識]이 의탁하여 결합된 수정체는 흰 종이 위에 가늘게 깎은 연필 끝을 꼭 찍으면, 찍은 사람만 겨우 알아볼 보일락 말락 정도, 그 크기다.
그런 난자, 정자, 영식(靈識)의 삼자합일의 수정체인 자식은 어머니의 강산 같은 은혜로 말미암아 차츰 사람의 형체를 갖추어 간다. 팔다리와 이목구비, 몸통이 생기고 오장육부와 온갖 것이 생겨 사람의 형상을 띠어 간다. 따라서 어머니야말로 대지 같은 생육자이며 진정한 창조주다.
자식의 육신은 그렇게 이루어지고 커져서 마침내 어머니의 뱃속을 운동장이나 수영장으로 삼아 논다. 발길질도 하고 주먹도 쥐어보고 머리도 흔들어보고 ‘어머니가 뭐하나?’ 관심도 기울여 본다. 어머니가 기분 좋으면 덩달아 기분 좋고 어머니가 괴로우면 따라서 괴롭다. 그 때는 전적으로 자식은 어머니고, 어머니는 자식이다. 이런 지극한 인연이 어머니와 자식의 천륜이고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러니 어찌 성인보다 우리 어머니가 더 높지 않을까! 따라서 자식에게 어머니는 저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이룬 부처님과 나란하다. 곧 부처님의 본 몸인 법(法)이란 말이 된다. 우린 여기서 성인 중에 성인〔聖中聖〕이신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 보이신 효심과 효행이 만세의 표준이고, 대도의 근본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 어머니는 이와 같은 법(法)이시기에 깨달음이다.
7.
자식에게 어머니는 부처님과 나란하다.
‘어머니’는 자식의 근본이고 고향이다. 현대인들은 더욱 그런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동경한다. 삶이 고달플수록 그렇다. 하지만 정작 남자는 여자를 모르고, 자식은 어머니를 모르고, 남편은 평생 함께 살아도 아내를 모른다. 남정네는 여인이 목숨 걸고 아이를 잉태하여 낳고 키운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쯤에서 우린 우리 자신을 향해 엄숙하게 물어볼 말이 있다. 과연, 여인네가 목숨을 걸고 아이를 낳듯 남정네도 목숨 걸고 누군가를 위해 인생을 살아본 적이 있는가? 또 여인네는 해와 같고 달과 같은 자식을 얻기 위해 남정네를 진정으로 우러러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양 쪽 다 거의 없거나 있어도 극히 드물지 모르겠다.
남성으로서는 거의가 그렇게까지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평생을 지낼 것이고, 여성으로서는 거의가 살다보면 자식은 남자와 관계없이 저절로 생긴다고 여길 것이다. 생기는 자식도 낳고 싶지 않아 사양하거나,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독신주의가 많은데, 굳이 기도를 하고 남성을 우러러보면서까지 자식을 얻을 필요가 어디 있는가? 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시작이 이러하니 자식은 부모를 모르고, 더구나 어머니를 모른다. 모르기는커녕 어쩌면 모른 체 하거나 외면하려고 갖은 술수를 부리며 사는지조차도 모르겠다. 만약 조금이라도 안다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부모 앞에서, 아니 어머니 앞에서 얼굴색을 붉힐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