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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2021..비극에서 마법으로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박동덕 저) (해외배송 가능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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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서적 2021..비극에서 마법으로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저자 : 박동덕
출판사 : 비움과소통
발행일 : 2011.25
페이지수/크기 : 487쪽 | A5 | ISBN-10 : 8997188046 | ISBN-13 : 9788997188048

[책소개]
깨달음의 동력, 그 거한 믿음의 자리에 계신 예수님!

예수님의 가르침이 담긴 도마복음을 올바로 읽도록 도와주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다큐멘터리 PD로 활동 중인 저자가 114절에 이르는 도마복음의 각 절을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으로 해석한 내용으로 엮은 책이다. 저자는 도마복음을 관통하는 예수의 질문이 바로 어떻게 하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가에 대한 질문의 연속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세상이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세상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으며, 이 깨달음의 불을 밝히지 않는 한 우리의 내면도 어둠뿐이라고 말한다. 우리 안에 죽지 않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생명'이라는 메시지를 복음의 다양한 일화 속에서 건져 올리고 있다.

[출판사서평]
2000여 년만에 해석된 그리스도의 비밀스런 가르침!

도마복음(Gospel of Thomas)은 서문에 예수의 12사도 중 한 명인 디두모 유다 도마가 썼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도마복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1898년 이집트의 옥시링크스(Oxyrhynchus)에서 발견된 그리스어 문서 중 일부가 도마복음으로 판명되었고, 그 뒤 1945년 나지함마디(Nag Hammadi)에서 콥트어판본이 발견된 것이다.
도마복음은 4대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의 삶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만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천주교는 도마복음을 외경(外經)으로, 기독교는 위경(僞經)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편 도마복음에 실려 있는 예수의 말씀이야말로 가장 순도가 높은 가르침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도마복음은 서언(序言)에서 예수의 제자 도마가 예수의 말씀을 받아 적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왜 기존의 종교들은 도마복음 속의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혹시라도 도마가 적은대로 이 글들이 예수의 말씀이라면 이것은 눈을 뜨고 도 눈 앞의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커다란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도마복음 26절)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꾸짖고 계신다. 이렇게 도마복음 속의 예수께선 내내 눈을 뜨라고 하신다. 이것을 깨닫지 않고서는 누구든 하늘나라에 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행복할 수 없는 가장 큰 까닭은 자신이 눈을 뜨고 있다는 생각으로 눈앞의 것을 보지 못하는 까닭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마복음에 실린 예수의 말씀은 너무 위험하다.
“사람들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거니와, 저들은 내가 이 땅에 분쟁을, 불과 칼과 전쟁을 주러 왔음을 모르고 있느니라.”
어쩌면 기존의 종교는 이렇게 평화가 아닌 불과 칼과 전쟁을 가져온 예수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깨달은 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 중에 하나이다. 잠들어있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서는 분쟁을 가져오는 사람이 되고 불과 칼을 가져오는 사람이 되는데 주저하지 않는 분이 예수인 것이다.
도마복음 1절에서 예수는 누구든 자신의 말을 올바로 풀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책은 이 말씀을 제목으로 하고 거기에 ‘비극에서 마법으로’라는 말을 덧대었다. ‘비극에서 마법으로’는 페테르 에르베가 쓴 《우리는 신이다》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예수의 말씀들을 올바로 풀어서 죽음을 맛보지 않는 때, 그 때가 비극이 마법으로 되는 순간이다.

이 책의 글들은 글쓴이의 블로그에 연재하던 것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 글들은 글쓴이가 10여 년 전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은 수행법인 위빠사나(Vipassana) 명상을 배운 이후 깨어있고자 노력한 시간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예수의 깨달음이 붓다의 명상법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그 가르침의 핵심 역시 진리가 ‘하나’라는 측면에서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이 책은 예수의 말씀에 대해 충분히 숙고한 후 자신이 읽은 예수의 말씀과 글쓴이의 읽기를 비교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 한 가지 읽는 분들이 염두에 둘 것은 이 ‘읽기’는 수많은 ‘읽기’ 중의 하나일뿐이라는 것이다. 더 많은 ‘읽기’들이 나와서 예수 말씀의 비밀을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는 것이 저자의 희망이다.

영원한 생명의 빛은 신성神性이자 불성佛性

그(예수)가 이르되,
“이 말씀들을 올바로 풀 수 있는 자는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예수께서는 굉장히 충격적인 선언으로 말씀을 시작하신다.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도마복음 제1절이 방송에서 쓰는 말로 ‘스트롱 스타트(strong start)’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듣는 이들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미망이나 잠에서 깨어나길 귀찮아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보다. 오죽했으면 그러랴 싶기도 해서 안타깝기도 하고 또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었을 예수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어른거리는 죽음의 올가미를 한사코 외면한다. 그러다가 올가미가 정면으로 다가와 목둘레로 걸쳐지면 순순히 목을 빼고 죽음의 집행을 기다린다. 마침내 올가미가 팽팽해지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 이전의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자신을 위안한다.
개중에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사람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집단의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한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이 1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는 예수의 말씀은 죽음은 어쩔 수 없는 거라는 강고한 선입견들을 정면으로 들이받는 도발인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여전히 넘볼 수 없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城)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을 향해 돌진하는 시도를 미친 짓으로 여기고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그쪽으로 고개조차 돌리려 하지 않는다.

이제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이 말들을 올바로 풀 수 있는 사람은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확인이 가능하지 않은 이 말씀은 불가지의 영역에 놓아두면 찜찜하긴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육체의 죽음을 겪었다가 살아난-너무나 유명해서 상식이 되어버린 사례로 무덤에서 걸어 나온 나사로와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예수 자신이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두 사례 역시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에서 ‘맛보지 않는다.’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죽음’이 주관적(主觀的)일 것임을 암시한다. 즉, 올바로 푼 이가 있어 그가 눈에 보이는 형식인 육체의 쇠락(衰落)을 통해 죽었다고 하여도 그의 내면(內面)엔 죽지 않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는 외면(外面)만 보고 죽음을 판단하는데 외적인 형태가 죽음의 모습을 띠었다고 해서 그의 내면까지 죽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성립한다. 그의 외면이 살아있을 때, 우리는 그의 내면을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의 외면이 죽었다고 해서 그의 내면까지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는 역(逆)으로 ‘이 말씀’을 올바로 풀지 못한 이들은 모두 죽음을 맛보았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즉, 올바로 풀지 못한 이들은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께선 무슨 연유로 당신의 말을 올바로 풀면 죽음을 맛보지 않을 거라고 하시는 걸까? 우리 안에 죽지 않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하신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죽음이라는 자기 최면 -혹은 집단의식- 을 빠져나올 수 있는 열쇠는……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다음은 정경(正經)에 있는 예수의 말씀이다.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마태복음 8:22)

예수께선 숨을 거둔 사람도 ‘죽은 자’라 하고 그 ‘죽은 자’를 장사지낼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도 ‘죽은 자들’이라고 하였다. 예수께선 숨을 거둔 사람이나 그 사람의 주변 사람들이나 같은 사람으로 본 것이다. 숨을 거둔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죽은 사람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깨어있지 못한 사람’이라거나 ‘잠든 사람들’처럼 ‘죽은 자’에 해당하는 조금 순화된 표현이 있기는 하다. 깨어있지 못하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누가복음 23:34)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 이들이 예수께서 말한 ‘죽은 자’이다.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들이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 나오는 눈먼 사람들이다.
태양 아래에서도 이들은 어둠 속에 있다. 이들이 어둠 속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어리석음 중에 가장 큰 어리석음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어리석음이 예수를 죽인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정신이 들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 그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떠나보냈다.

예수로 인해 자신들이 작아지기 때문에
예수로 인해 자신들이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사람들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런 일들은 계속 되풀이될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예수는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 깨어있지 못한 사람들을 ‘죽은 자’라 했다. 예수의 분류에 따를 때 당신이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면 당신 역시 ‘죽은 자’이다. 그러나 예수께선 당신의 말씀을 올바로 푸는 사람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할 것이라 한다. 당신이 깨어나려고만 한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예수께서 당신을 위해 이 말씀들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이 깨어나려고만 한다면 다음의 과정들을 거쳐 죽음을 맛보지 않게 될 것이다.
먼저 자신이 예수께서 이른 ‘죽은 자’임을 아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이것으로 이미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자신이 ‘죽은 자’였다는 각성(覺醒)은 의식에 하나의 불을 켠다.
그리고 이것이 ‘깨달음’의 시작이다.
불이 켜지면 당신 안에 있던 어둠이 사라진다.
어둠이 사라지니 당신은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 안에 죽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
그것을 보게 된 당신은 죽음이 자신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신은 영원한 생명(生命)을 찾은 것이다.(영원한 ‘생명의 빛’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이자 붓다의 불성(佛性)과 다름아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당신의 말씀을 올바로 푸는 이가 있다면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까닭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당신이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이자 극락이다.

그 나라(천국)는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밖에 있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밖에 있느니라.”
“너 자신을 알라.
그러면 남도 너희를 알 것이고,
너희도 너희가 살아 계신 아버지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그러나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지 못하면
너희는 가난에 처하고, 너희가 가난 그 자체라.”

예수께서는 ‘그 나라(천국)’는 ‘우리 안에 있고, 또 우리 밖에’ 있다고 하신다. 쉽게 얘기해서 ‘그 나라’는 모든 곳에 있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예수께선 분명히 ‘그 나라’가 어디에 따로 있다고 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왜 예수를 따른다는 무수히 많은 ‘가르치는 자들’은 예수와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일까? 그것은 ‘가르치는 자들’이 ‘그 나라’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알고 있다면 예수와 다르게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기존의 종교가 도마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이다. 자신이 틀린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보다는 도마복음 속의 예수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그 나라’는 어떻게 생겼기에 모든 곳에 있다는 ‘그 나라’가 왜 우리 눈엔 보이지 않는 걸까?
예수께서 바로 그 의문을 풀어 주신다.

“너 자신을 알라. 그러면 남도 너희를 알 것이고…”
‘나’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아는 일이 깨달음의 시작인데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대해 얘기한다면 얼마나 허무맹랑하겠는가?
이렇게 자신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며, 구하는 이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노디 세아우톤(Gnothi Seauton)’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도 이렇게 가르쳤다. 이 말은 그리스인들이 신탁(神託)을 듣곤 했던 델피 신전에 새겨져 있었다고 알려졌다. 이 가르침은 ‘현재 네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작은 앎인지를 자각(自覺)한 후에라야 새롭게 진리(眞理)로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앎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자신이 무지(無知)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누가 새겼는지 신전 입구에 이 가르침을 새긴 사람이나 소크라테스나 예수께서 이 짧고 단순 명료한 가르침을 강조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실 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하지만 언제나 아는 만큼만 볼 수 있고 볼 수 있는 만큼만 보이는 것이리라.

그래서 정리하면, ‘그 나라’는 우리의 ‘안과 밖’에 있으며 이 말은 ‘그 나라’가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 있다는 얘기이며, 우리가 ‘그 나라’를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이 자신을 알게 되면 가르치는 자들이 ‘그 나라’가 여기에 있다거나 저기에 있다고 할 때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자신을 알지 못하기에 다른 사람의 아는 것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 ‘자신을 안’ 이후에 대해서 설명하신다.

“그러면 남도 너희를 알 것이고, 너희도 너희가 살아 계신 아버지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그 나라’가 따로 어디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알게 되고, 그러면 지금 있는 이곳이 ‘그 나라’(천국)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제목에 덧댄 ‘비극에서 마법으로’가 뜻하는 바이다.)
그리고 예수께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면 우리가 ‘살아계신 아버지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신다. 우리가 ‘살아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아니었는데 자신을 알게 된 후에야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는 ‘아버지의 자녀’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와 알지 못하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알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 천국이며 알지 못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 지옥인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생명(生命)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가 생명의 상속자(相續者)라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다른 생명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가 없어진다.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합리화 하고 있다면 그것은 먼저 자신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이 천국이 아닌 것은 자신이 자신을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며 자신을 알지 못하기에 우리가 ‘살아계신 아버지’의 자녀임을 알지 못한 까닭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이 ‘살아계신’이라는 현재형이다. 게다가 영원히 현재형이다. 아버지가 영원히 살아계시기 때문이기도 하며 현재 속에서만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을 생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생명을 알게 되면 죽음을 맛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도 우리는 우주의 그 무엇과도 분리되어 있지도 않고 분리될 수도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주와 분리되어 있지 않은 ‘나’는 우주의 일부분일 수는 있지만 우주와 별개는 아니다. 이 ‘나’를 아는 일이 우주를 아는 일이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지 아니하였던가?
“자기를 찾은 자에게 세상은 대단하지 않다.”라고.

‘자기를 찾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가.
그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빛(神性 또는 佛性)이 되는 길이며, 이 땅에서 천국과 극락을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만유가 나로부터 나왔고 또 만유가 나에게 이르노라

“나는 만유 위에 있는 빛이라.
내가 곧 만유라.
만유가 나로부터 나왔고 또 만유가 나에게 이르노라.
통나무를 쪼개라.
그러면 내가 거기 있다.
돌을 들라.
그러면 거기서 나를 찾으리라.”

엄청난 말씀이다. 반면, 자신이 신(神)임을 알고 자신이 그 ‘하나’와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진술이다. 이 진리(眞理)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이 진술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 자신이 ‘신’임을 알고 그 앎이 믿음으로 단단해져 있다면 이 진술을 비단 예수만이 할 수 있는 선언은 아니다. 예수께선 이것을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우물가에 모여 있기만 할 뿐이며, 자신의 것을 팔아 진주를 구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통나무를 쪼개라. 그러면 내가 거기 있다.
돌을 들라. 그러면 거기서 나를 찾으리라.”

모든 것이 ‘신’이 아닐 수가 없다. 그 어떤 것도 신과 떨어져서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어떻게 모든 것과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예수께선 단서를 주셨다. ‘빛과 소금’이 그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 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고, 맛을 잃지 않는 소금이 되라는 유명한 가르침이다.
그런데 우연히도(?) 빛과 소금은 저마다 ‘하나’가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빛은 어둠을 만났을 때, 소금은 물을 만났을 때 자신의 경계를 잃어버린다. 그렇다고 빛의 속성이나 소금의 속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빛이나 소금은 어둠과 물속으로 섞여 들어가면서도 자신의 속성을 잃지 않고 어느 순간 전체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빛과 소금의 이 능력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은 아닐까. 세상일에 빛처럼 소금처럼 녹아들면.어느새 그것과 분리되어 있지 않은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다.

[목차]
읽기 전에
-당신께
-프롤로그, 독백

-예수의 깨달음을 담은 비밀 성경 도마복음
서언(序言)
제1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제2절: 찾으면 혼란스러워지고 놀라리니
제3절: 그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느니라
제4절; 먼저 된 자들 중 많은 이들이 나중 될 것이다
제5절: 너희 바로 앞에 있는 것을 깨달아라
제6절: 거짓말을 하지 말라
제7절: 사자에게 먹힘을 당하는 사람에게 화가 있다
제8절: 지혜로운 어부는 좋고 큰 고기 한 마리를
제9절: 씨 뿌리는 사람이 밖에 나가 씨를 한 줌 뿌리다
제10절: 불이 붙어 타오르기까지 잘 지키리라
제11절: 하늘은 사라지고 그 위에 있는 하늘도 사라지리라
제12절: 누가 우리를 인도하리이까?
제13절: 내가 누구와 같은지 말해보아라
제14절: 너희가 금식하면 스스로에게 죄를 가져올 것이다
제15절: 여자가 낳지 아니한 자를 보거든
제16절: 이 땅에 분쟁을, 불과 칼과 전쟁을
제17절: 눈으로 보지도 못했고, 귀로 들어보지도 못했고
제18절: 끝이 어떻게 임하니이까?
제19절: 있기 전에 있는 자는 복이 있으니
제20절: 천국이 어떠할지 저희에게 말씀해 주소서
제21절: 당신의 제자들은 무엇과 같으니이까?
제22절: 젖 먹는 아이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제23절: 나는 너희를 택하리니, 천 명 중에서 한 명
제24절: 당신이 계신 곳을 보여주소서
제25절: 네 동무들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제26절: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제27절: 너희가 이 세상 것들에 대해 금식하지 않으면
제28절: 나는 내 설 곳을 세상 가운데 두고
제29절: 만약 영을 위해 육이 생겨나게 되었다면
제30절: 신들이 셋 있는 곳에 그들은 신이거니와
제31절: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하고
제32절: 산 위에 세워지고 요새화된 도성은
제33절: 너희 지붕에서 외치라
제34절: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제35절: 사람이 강한 자의 손을 결박하지 않고서야
제36절: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제37절: 우리는 언제 당신을 뵙겠나이까?
제38절: 나를 찾아도 나를 볼 수 없게 되는 날이 오리라
제39절: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제40절: 포도 줄기가 아버지와 떨어져 심어졌거니와
제41절: 있는 자는 더 받을 것이되
제42절: 과객이 되어라
제43절: 당신은 누구시나이까?
제44절: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제45절: 덤불에서 포도를 딸 수 없고
제46절: 요한보다 더 크게 되리라
제47절: 누구도 한시에 두 마리 말을 탈 수 없고
제48절: 함께 산에 일러 ‘이곳에서 옮겨 가라!’ 하면
제49절: 홀로이고 택함을 입은 자는 복이 있나니
제50절: 너희 아버지의 증거가 무엇이냐?
제51절: 죽은 자들이 쉬는 날은 어느 때이오며
제52절: 너희 중에 있는 산 사람은 보지 아니하고
제53절: 할례가 유익하나이까
제54절: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제55절: 누구든지 제 아비 어미를 미워하지 않는 자는
제56절: 세상을 알게 된 자는 시체를 찾았느니라
제57절: 아버지의 나라는 좋은 씨를 가진 사람과 같으니
제58절: 고통당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제59절: 너희가 사는 동안 살아계신 이를 주목하라
제60절: 쉴 곳을 찾아 시체가 되어 먹히는 일이 없도록
제61절: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 것이니라
제62절: 오른손이 하는 바를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
제63절: 이렇게 준비하였거니와 그날 밤 저가 죽더라
제64절: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제65절: 상속자임을 알고 잡아 죽였느니라
제66절: 집 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제67절: 모든 것을 아는 자도 제 스스로를 모르면
제68절: 미움과 핍박을 받으면 복이 있나니
제69절: 아버지를 진정으로 알게 되었음이라
제70절: 너희 속에 있는 그것이 열매를 맺게 하면
제71절: 내가 이 집을 헐겠거니와
제72절: 아버지의 유산을 나와 더불어 나누도록 하소서
제73절: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제74절: 주님, 우물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으나
제75절: 홀로인 자만이 신방에 들리라
제76절: 아버지의 나라는 팔 것이 많은 장사가
제77절: 나는 만유 위에 있는 빛이라
제78절: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로 나왔느냐?
제79절: 당신을 낳은 태와 먹인 젖은 복이 있나이다
제80절: 누구든 세상을 알게 된 자는 몸을 찾았고
제81절: 누구나 부해진 자는 다스리기 마련이지만
제82절: 나에게 가까이 하는 자는 불 가까이 있는 것
제83절: 형상들은 사람들이 볼 수 있으되
제84절: 너희가 나기 전에 생겼고, 죽지도 않고
제85절: 아담은 큰 능력과 큰 부요함을 가지고 나왔으나
제86절: 인자는 누워서 쉴 곳이 없느니라
제87절: 몸에 의지하는 몸은 가련하거니와
제88절: 사자들과 선지자들이 너희에게 와서
제89절: 어찌하여 잔의 바깥을 씻는가?
제90절: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제91절: 너희 중에 있는 이를 알아보지 못하니
제92절: 구하라. 그리하면 찾으리라
제93절: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라
제94절: 구하는 자는 찾을 것이요
제95절: 돈이 있으면 오히려 돌려받지 못할 자에게 주라
제96절: 아버지의 나라는 누룩을 가져다가
제97절: 아버지의 나라는 곡식이 가득한 항아리를
제98절: 아버지의 나라는 힘센 자를 죽이려는
제99절: 주님의 형제들과 어머니가 밖에 서 있나이다
제100절: 가이사의 사람들이 세금을 내라 하나이다
제101절: 자기 아비와 어미를 미워하지 않으면
제102절: 여물통에 누워 있는 개와 같이
제103절: 도적이 어디로 들어올지 아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제104절: 신랑이 신방을 떠날 때야 저들이 금식하고
제105절: 창녀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니라
제106절: 둘을 하나로 만들면 너희는 인자가 되리니
제107절: 아흔 아홉 마리보다 너를 더 귀히 여기노라
제108절: 내 입으로부터 마시는 자, 나와 같이 될 것이고
제109절: 그 나라는 자기 밭에 보물이 묻힌 것을 모르고
제110절: 세상을 찾아 부자가 된 자는 세상을 부인해야
제111절: 하늘과 땅이 너희 안전에서 말려 올라가겠거니와
제112절: 화 있을 진저, 영혼에 의지하는 몸이여
제113절: 그 나라는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니
제114절: 스스로를 남자로 만드는 여자가 천국으로
_ 에필로그

[저자소개]

저자 박동덕은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92년부터 방송프로덕션에 재직했다. ‘세계의 공동체-희망의 도시, 오로빌(KBS수요기획/1997)’, ‘터키대지진(KBS세계는 지금/1999)’, ‘KBS현장르포 제3지대’, ‘KBS인간극장’, ‘가난한 자들의 철학자-얼쇼리스의 희망수업(KBS수요기획/2004)’, ‘이것이 미래교육이다(Q채널/2004)’, ‘EBS다큐인’, ‘EBS희망풍경’, ‘EBS세계테마기행(남아프리카공화국/2010)’, ‘KBS풍경이 있는 여행’ 등 다수의 교양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이것이 미래교육이다’로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과 ‘방송위원회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방송프로덕션 ‘비에마로’ 대표를 맡고 있다. 2001년 보리수선원에서 위빠사나를 배웠고 그동안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하고자 노력해왔다. 2010년 여름, 알 수 없는 이유로 쓰러졌다가 의식을 회복한 후 ‘왜 돌아왔을까?’를 고민하다 블로그에 연재하던 ‘도마복음 읽기’를 마쳐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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