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서적 1992..크게 죽어야 크게 산다 (정찬주의 무심기행)
저자 : 정찬주
출판사 : 김영사
발행일 : 201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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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자신에게는 사자같이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봄바람같이 자애로웠던 영축산 도인 경봉 스님!
머릿속에 불이 붙도록 치열하게 정진했던 스님의 법향을 따라간 경건한 구도의 발걸음!
《크게 죽어야 크게 산다》는 정찬주 작가가 경봉 스님의 수행처를 직접 순례하며 써 내려간 또 다른 가르침의 기록이다.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국 곳곳의 암자와 절을 찾아다닌 암자 전문가이도 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스님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영축산 도인이었던 스님의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가르침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경봉 스님이 출가발심한 통도사 안양암에서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보고 대오한 통도사 극락암 삼소굴, 자결할 각오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 가행정진한 해인사 퇴설당과 직지사 천불선원, 마음부처가 방광한 밀양 무봉사, 주장자 법문을 한 천성산 내원사까지. 스님의 수행처인 절과 암자, 선방을 찾는 만행 끝에 비로소 참나를 발견한다. 버리고 또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촌철살인의 법어와 선문답까지, 스님은 눈앞의 주인공을 보고도 모르는 중생에게 ‘화엄의 바다’ 같은 사자후를 던진다.
이 책에는 선방의 문고리 하나, 절에 드리워진 산수유나무 열매 하나에서도 스님의 그림자를 찾고자 한 작가의 마음이 곳곳에 묻어있다. 경봉 스님이 정진에 정진을 거듭한 절이나 암자, 선방에 남은 덕화의 향기를 맡기도 하고, 때로 저자는 스님의 칼칼한 가사장삼 같은 통도사 극락암에서 잠을 자면서 스님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또한 영축산 백련암에서는 피를 토하며 떠도는 폐병 환자나 미친 사람도 이곳으로 데려와 수년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결국 부처님의 품안으로 오게 만든 스님의 자비를 되새겼다.
하지만 자신의 수행에 있어서는 냉정하게 자신을 다스렸던 스님의 곧은 면모를 반추하기도 한다. 안양암 소쩍새 소리를 들으면서 저자는 피를 토하듯 구도의 의지를 보인 스님을 떠올리기도 한다. 스님은 해인사 퇴설당과 직지사 천불선원에서는 겨울 내내 입안에 얼음을 물고 수행하다가 입안이 다 망가지고, 졸음을 쫓기 위해 목을 매단 채로 좌선을 했으며, 자결할 각오로 6개월 동안 누에고치처럼 들어 앉아 정진하는 등 인간 정신의 극점을 넘어선 치열한 수행을 한 끝에 문 없는 문(無門關)에 들었다. 또 중국의 공안집이나 선가어록을 답습하지 않고, ‘여기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같은 독창적인 화두를 제시해 스님이 주석했던 삼소굴을 찾아온 수많은 이들에게 활로를 열어주기도 했다.
이처럼 작가는 스님이 머물렀던 수행처를 경건하게 돌아보며, 영축산 도인 스님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는 각 수행처에 남아 있는 스님의 흔적을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속에서 생생하게 구현해내어, 스님의 깊고 넓은 생애와 사상을 조명한다. 이 책에서는 수행자의 틀에 갇히지 않고 거침없이 도를 굴린 대자유인, 경봉 스님의 수행의 길은 집착하는 ‘거짓의 나’를 죽여야만 ‘참나’로 살 수 있다는 가르침을 전한다.
1부에서는 경봉스님의 수행처를 따라가는 구도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면, 2부에서는 스님이 남기신 법어, 선문답, 다시 등 가르침을 정리해 내면의 녹을 닦아낼 수 있도록 했다.
스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짚으면서 ‘내 안의 주인공’라는 화두를 끊임없이 궁구한다. 주장자로 머리통을 내리칠 만큼 엄격했지만, 한밤중에 알사탕을 갖다 줄 정도로 자애로웠던 자비의 화신 경봉 스님의 흔적을 나지막이 좇음으로써 ‘눈앞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는 구도의 길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마음으로 가는 길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여기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189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경봉 스님은 16세에 양산 통도사로 가서 성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해담 스님에게서 비구계를 받았다. 강원에서 공부하면서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반 푼어치의 이익이 없다(終日數他寶 自無半錢分)’는 구절에 크게 발심하여 경전을 접고 내원사, 해인사, 직지사, 마하연사와 석왕사 등 전국의 선방을 돌며 참선정진을 거듭했다. 통도사 안양암으로 돌아와 동구불출 정진으로 무문관에 들고, 극락암으로 옮겨 화엄살림법회를 주재하면서 용맹정진하던 중 36세 되던 1927년 12월 13일 새벽에 방안의 촛불이 춤추는 것을 본 순간 홀연히 대도(大道)를 성취하였다. 이후 스님은 통도사 주지 등을 역임하고, 1959년 62세에 극락호국선원 조실로 추대되어 전국에서 찾아오는 선승들을 지도하며 선풍을 크게 떨쳤다.
스님의 가풍은 참선과 불학, 염불, 기도, 다도 등 불가의 모든 방편이 한데 어우러진 참으로 깊고도 넓은 ‘화엄의 바다’였다. 스님은 중생들이 힘든 삶을 고백하면 “이왕 사바 세계에 왔으니 근심걱정 놓아버리고 한바탕 멋들어지게 살라”고 하셨고, 수좌들이 공부가 안 된다고 물어 오면 당신의 수행담을 들려주시며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보라”고 말했다.
스님은 한국의 근현대 고승인 혜월, 만공, 용성, 만해, 한암, 제산, 효봉, 운봉, 동산, 향곡, 전강, 청담, 일타 스님 등과 격외의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기록들은 소중한 자료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세수 91세 되던 1982년 7월 17일, 시자 명정 스님이 “스님, 가시면 보고 싶습니다. 어떤 것이 스님의 참모습입니까” 하고 묻자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대문의 빗장을 잠그듯 열반에 드셨다.
추천사
이 책을 추천하는 까닭은 우리 스님이 왜 아직까지도 선가에서 우리 시대의 도인이라고 칭송받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사바세계를 무대 삼아 주인공으로 한바탕 행복하게 사는 인생인지 다시 한 번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_통도사 주지 원산 스님
[목차]
[책속으로]
오늘은 금강계단이 내게 ‘돌종 소리를 가져 오라’고 하는 것 같다. 내 안의 무심無心을 보여 달라는 말처럼 다가온다. 석종 속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듯 내 안에도 마음부처心佛가 있는 것이다. ‘돌종 소리를 가져오라’는 경봉스님이 제시한 활구인데, 스님의 생활법문이나 화두는 우리나라 다른 고승들과 달리 중국의 선어록에서 빌려오지 않고 당신께서 독창적으로 창안한 것이 많다. 그렇다면 스님이 제시한 화두에 모범답안이 있는 것일까. ‘돌종 소리를 가져오라'는데 답은 무엇일까. 경봉 스님이 원하는 답은 무엇일까. 아니면 답을 찾는 일은 무의미한 것일까.(30쪽)
그날 경봉스님은 머리에 심심의 불이 붙어 안양암을 도망쳤으나, 스님을 흠모해온 나는 거꾸로 발심發心의 불을 붙이러 안양암 경내로 들어선다. 암자 위 산자락에는 특이한 이름의 북극전北極殿이 있다. 민간신앙이 스민 북극전 뒤 숲 속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누군가가 소쩍새 울음소리를 피를 토하는 소리라고 했던가. 안양암에서 한때 무문관 정진을 했던 경봉스님의 치열한 구도의지 같은 소리다.(47쪽)
진영 앞에서 엎드려 삼배하고 큰방으로 건너와 방바닥에 눕는다. 방바닥이 경봉스님의 가슴 같다. 지친 나를 스님께서 안아주시는 것 같다. 어젯밤 뜬눈으로 밤을 새워서인지 졸음이 밀려온다.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이다. 홀연히 영축산처럼 크나큰 경봉스님의 마음이 보인다. 한 순간에 경봉스님의 칼칼한 가사장삼 속으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솔바람 소리가 우우우 하고 들린다. 밤바다의 파도소리 같다. 경봉스님께서 모지랑 붓을 휘두르며 송도활성松濤活性이라고 일필휘지로 써 내리고 있는 듯하다. 문밖은 이미 먹물 같은 어둠이 다가와 있다. 경봉스님께서 선필禪筆을 휘두르는 듯 묵향이 은은하게 번지는 밤이다.(114~115쪽)
밀密이란 그림자와 양陽이란 빛이 어우러진 강江이 아닐까 싶다. 강은 무봉사 스님들의 법열과 애환을 모두 다 지켜보았을 터. 사명대사 동상을 만들려다 좌절한 대월 스님의 눈물도 보았을 것이고, 경봉 스님의 마음부처가 방광하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 사미승 원명이 겨울 날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치는 소종小鐘 소리도 들었을 것이고. 그 모든 사연을 알면서도 침묵한 체 흐르는 강이기에 더 푸르고 그윽한지도 모른다.(140~141쪽)
무아란 나라고 고집하는 내가 아니다. ‘집착하는 나’ 혹은 ‘거짓 나’를 죽여야만 드러나는 진경眞景의 ‘참나’이다. 여기서의 죽임은 살생이 아니라 나를 위한 큰 자비요 축복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러한 나를 본래의 나라며 착각하고 집착하면서 산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절인연을 거스르면서 욕망을 내려놓지 못한 채 끙끙대며 산다. 경봉 스님과 인연이 깊었던 서옹 스님께서는 생전에 내게 ‘살아도 죽은 사람이 있고 죽어도 산 사람이 있다.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말씀했다. 죽어도 산 사람이란 집착하는 나를 버리고 본래의 나를 찾은 대자유인일 터이다. 그렇다. 자기에게 다가온 시절인연을 잘 살피면서 ‘크게 죽는 것이 크게 사는大死一番 大廓顯正’ 길이 아닐까 싶다.(201쪽)
[저자소개]
저자 정찬주는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글쓰기로 오랜 기간 명상적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온 작가 정찬주는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글을 쓰는 작가로 살아오던 그는 자연을 스승 삼아 진정한 ‘나’로 돌아가기 위해 저잣거리의 생활을 청산하고, 늘 마음속에 그리던 남도 산중에 집을 지어 들어앉았다. 법정 스님은 작가를 재가제자로 받아들여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내렸다. 산중에 있는 듯 없는 듯 무지렁이 농부처럼 잊힌 듯 살면서 자연의 섭리를 좇아 살고자 하는 그의 바람은 솔바람으로 시비에 집착하는 귀를 씻어 불佛을 이룬다는 뜻의 ‘이불재耳佛齋’라는 집 이름에 담겨 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하늘의 도》《다불》《만행》《대 백제왕》《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추어라》, 산문집 《암자로 가는 길》《자기를 속이지 말라》《선방 가는 길》《돈황 가는 길》《나를 찾는 붓다 기행》《정찬주의 다인기행》《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그리고 어른을 위한 동화 《눈부처》등이 있다. 1996년 행원문학상, 2010년 동국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