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서적 158..아쇼까왕 비문
저자 : 츠카모토 게이쇼
역자 : 호진, 정수
출판사 : 불교시대사
발행일 : 2008. 5. 14
페이지수 : 352페이지
기원전 3세기에 인도 마우리야(Maurya) 왕조의 제 3대왕으로서 인도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아쇼까(Asoka)는 한 사람의 통치자로서 뿐만 아니라 고대인도의 종교 사상 문화 역사 사회 경제, 심지어 고고학언어학법률 분야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쇼까는 고대인도 불교와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갠지스 강변의 작은 신흥 종교였던 불교가 전인도뿐만 아니라 인도 바깥에 까지 전해져서 세계적인 종교로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직접· 간접적인 영향의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Histoire du Bouddhisme indien, E. Lamotte, p. vi). 따라서 인도 고대불교를 알기 위해서는 아쇼까의 연구는 필수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일찍부터, 주로 구라파를 비롯한 세계의 적지 않은 인도· 불교학 관계 학자들이 아쇼까에 대해 깊이 연구를 했다. 이 방면의 연구는 앞으로 우리 학계가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 이라고 생각된다.
고고학적인 자료로서는 아쇼까 자신이 인도의 여러 지방의 석주와 바위에 새기게 해 놓은 그의 통치이념들, 소위 말하는 법칙(法勅)들이 있다. 이것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확실한 금석문(金石文)으로서 인도역사를 위한 제1차 자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법칙들은 여러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고, 역시 몇 가지 다른 언어로 쓰여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도 약 40개 정도이다. 법칙의 내용 및 그것이 새겨진 비석에 따라 다음과 같이 7종으로 나눈다. 즉 (1)14장마애법칙(十四章磨崖法勅), (2)별각(別刻)법칙, (3)소(小)마애, (4)7장석주(石柱)법칙, (5)소석주법칙, (6)동원각문(洞院刻文), (7)황후(皇后)법칙이다.
아쇼까 왕의 비문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비문이다. 그러나 이 비문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겨우 170년 전(1837), 영국학자 제임스 프린셉(James Princep)이 비문 해독에 성공함으로써부터 였다. 비문의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 중요성은 매우 크다. 이 비문 덕택으로 아쇼까왕의 관정(灌頂, 卽位)연대를 알게 되었고, 그것을 가지고 붓다의 입멸연대도 추정해 낼 수 있었다. 역시 붓다의 탄생지를 비롯한 몇몇 성지(聖地)들의 확인, 붓다가 사용한 언어, 가장 오래된 몇몇 불교 경전들의 명칭, 기원전 3세기의 불교 교단, 불교의 전도(傳道) 등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쇼까의 비문은 불교와 관련된 사실들 뿐 아니라 왕의 인간적인 모습, 그의 통치 이념과 활동, 신앙생활과 종교정책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인도 고대의 종교·사상·예술·역사·사회·경제·법률뿐 아니라 언어학·고고학 등 인도 고대사의 많은 문제들을 해명하는 데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이와 같은 중요성을 가진 이 비문이 최근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비문에 사용된 언어와 문자가 완전히 잊혀져 버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현대 학자들이 “마가다지방의 언어”라는 의미에서 “Mgadh”라고 이름을 붙여준 언어로서, 쁘라끄리뜨(Prkrit)어의 일종이다. 그것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브라흐미(Brhm) 문자를 사용했다. 게다가 고대 서북 인도의 카로슈티(Kharot) 문자와 페르시아어의 일종인 아람어(Aram) 및 그리스어로 쓰인 것도 있었다.
역자 서문
머리말
일러두기
제1부 아쇼까왕 비문
서설
1. 비문의 소재지
2. 정치와 사회·경제
3. 법에 의한 통치
4. 불교와의 관계
비문
Ⅰ. 14장마애법칙(十四章磨崖法勅)
Ⅱ. 별각마애법칙(別刻磨崖法勅)
Ⅲ. 소마애법칙(小磨崖法勅)
Ⅳ. 7장석주법칙(七章石柱法勅)
Ⅴ. 소석주법칙(小石柱法勅)
Ⅵ. 동원각문(洞院刻文)
Ⅶ. 황후법칙(皇后法勅)
해설 참고문헌
연표(年表)
제2부
Ⅰ. 룸민데이의 아쇼까 석주각문재고
Ⅱ. 아쇼까 비문
Ⅲ. 아쇼까왕과 불교
아쇼까왕 비문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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