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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1463..남북조불교사 (이영석 저) (해외배송 가능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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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서적 1463..남북조불교사 (이영석 저)

저자 : 이영석
출판사 : 혜안
발행일 : 2010. 7. 5
페이지수/크기 : 562쪽 l A5 l 제본형태 : 양장본 l
ISBN-10 : 8984943959 l ISBN-13 : 9788984943957

[책소개]
30여 년간 중국불교사 특히 중국에서도 불교가 도입, 정착된 시기인 남북조시대(4~6세기)의 불교사를 중심으로 연구해 온 이영석 교수는 그간의 연구들을 종합하여 이제『남북조불교사』란 책으로 간행함으로써 한국학계의 중국불교사 연구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데 거름이 되고자 한다.

[출판사 서평]
한국불교사에 대한 그동안의 많은 연구성과에도 불구하고, 불교를 삼국에 전했고, 이후 한국불교의 성장에 지속적이고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중국불교사에 대한 국내 학계의 연구들은 별로 활발하지 않아 일본학계의 연구성과에 많이 의존해 왔었다. 30여 년간 중국불교사 특히 중국에서도 불교가 도입, 정착된 시기인 남북조시대(4~6세기)의 불교사를 중심으로 연구해 온 이영석 교수는 그간의 연구들을 종합하여 이제 『남북조불교사』란 책으로 간행함으로써 한국학계의 중국불교사 연구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데 거름이 되고자 한다.

『삼국지』로 널리 알려진 위·오·촉의 삼국시대는 사마씨의 진(晋)의 전국통일로 귀결되었지만, 뒤이은 북방 호족(胡族)들의 침략으로 진 왕실은 양자강 남쪽으로 도망가, 화북(華北)지역은 소위 ‘5호16국’의 쟁란이, 강남은 ‘6조’가 단명 교체되는 ‘남북조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에 특히 화북의 정치사회적 혼란은 극도에 달하여 백성의 생활은 피폐해졌고, 또 한인의 남하와 더불어 중화주의사상이나 한족의 전통문화는 파괴를 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상은 오히려 불교의 중국전도에는 대단한 기회였다.
책의 제1부인 북조불교에서는 이런 정치사회적 혼란 속에서 불교의 중국화, 토착화 과정을 역사적으로 규명한다. 이전에 내세관이 없었던 중국에 인과응보나 윤회전생의 불교사상은 힘든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의 안락을 추구하는 일반 민중에게 깊이 침투할 수 있었고, 아울러 신이(神異)의 영험과 기적을 일으키는 고승들의 존재는 호족군주의 존경을 얻음으로써 유례없는 국가불교로서 융성할 수 있었다.
이런 예는 후조(後趙)의 석륵·석호와의 유대를 통해서 불교의 대중화에 필생의 노력을 경주한 서역 승려 불도징에서 잘 드러난다. 중원통일을 욕망하는 석륵을 배경으로 불도징은 신이의 방법을 통해서 그 정치고문이자 대화상(大和上)의 칭호를 부여받고, 1만 명의 중국인 제자를 길렀으며, 893개의 사찰을 건립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불교를 북중국에 토착화시켰다. 그러나 양자의 결합은 불교의 교의를 통한 종교적인 연계가 아니라 상호이용이라는 외형적 결합이었기에 이후 북조불교가 ‘국가불교로서의 성격’을 띠게 된 바탕을 제공하였다.
저자는 이어 선비족 탁발씨가 세운 강력한 정복국가인 북위의 건국에서 분열기에 이르기까지 북위불교의 성격에 관해서 살펴본다. 태조 도무제(道武帝)는 중원통일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초민족적 종교인 불교를 이용해서 호·한 융합을 도모하였다. 국가 차원에서 사탑을 건립하여 승도를 거주하게 한 것도 불교를 군주권에 예속시키고자 했던 그의 정책목표와 직결된다. 불교교단에서도 군주의 절대권을 인정하고 복종함으로써 군주를 현세의 여래(如來)로 숭배하였다. 여기서 북위불교는 왕주교종(王主敎從)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북위불교는 태무제 때(446년) 전국적 폐불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다. 병력증강을 위한 승려의 환속조치 등 그의 폐불은 화북통일 이후 왕권강화에 따른 전제체제의 확립이라는 정책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태무제의 뒤를 이은 문성제는 폐불을 철회하고 불교부흥정책을 폄과 동시에 승관제 정비, 사원의 역할과 승니의 자격을 통제한 것 등을 통해서 불교계를 왕권통제 아래 놓이게 하였다.
이후 북위에서는 중국불교 토착화의 한 상징인 운강석굴과 용문석굴의 대대적 조영이 이루어지는 등 낙양을 중심으로 한 북조불교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동·서위의 분열 후에 낙양을 둘러싼 전쟁의 부단한 발생과 많은 불교사원들의 파괴로 결국 절멸의 상태로 갔다. 이후 서위를 뒤이은 북주의 실세이자 수나라를 개창한 양견은 새 왕조의 개창을 위해서 민심의 안정과 백성의 중망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다시 불교부흥정책을 내세우고, 이는 당나라 때의 장안불교의 전성기로까지 이어진다. 저자는 이상에서 북조불교의 특성으로, 군주의 신앙심보다 오히려 군주권의 강화라고 하는 정치적 의미가 강하고, 왕-국가의 통제 아래 불교의 융성과 교단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국가불교란 점을 든다.

책의 제2부에서는 동진(東晋)에서부터 진(陳)까지의 남조불교를 다루었다. 동진이 건국된 이래 국가 대권은 왕·유·환·사씨 등 귀족이 번갈아가면서 집권하고 황제는 이름뿐이었다. 때문에 황제의 권력은 미약하고 귀족의 세력은 지나치게 강성하였다. 동진불교 역시 귀족의 재정적 지원 아래 발전하면서 귀족불교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귀족의 비호 하에서 승려들은 궁정을 자유롭게 출입하면서 황실의 불교교화에 노력하게 되었다. 불교의 교세가 확충되고 그 교단이 발전하게 된 것도 결국 황제의 불교신앙과 결부된 것이라기보다 당시 귀족들의 불교보호정책에 기인한 것이었다.
동진 목제 때 관료 수반이었던 하충과 동생 하준이 사찰들을 건립하고 수많은 승려를 공양하였다는 것이나, 정치실세인 환온이 축법태나 법광 등 승려들과 깊은 교유가 있었다는 점 등이 그 좋은 예이며, 강남의 대표적인 사찰 와관사의 창건도 조정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관료 귀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불교 교세가 상·하층 사회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재가부녀 신자뿐만 아니라 출가승니들도 대량으로 배출되어 지묘음니 같은 비구니는 정치적 인사권에 깊이 관여하였다.
동진의 무장 유유는 420년 쿠데타로 송을 창건하였다. 일생을 진중에서 보낸 유유는 반란을 토벌한 후 북벌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찾아온 승려들을 존중함으로써 불교 측의 지지와 불교도의 민심을 얻고자 하였다. 불교교단에서도 혼란기에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유유와 결탁함으로써 그 권력의 비호 아래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나아가 자유로운 포교활동을 확립하고자 했다.
당시 남조불교계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중국 승려들은 혜엄과 혜기, 혜관이었고, 서역승으로서는 구나발마와 구나발타라가 있었는데, 혜엄은 유유의 장안 정벌에 동행하고 유송의 창건에 깊이 관여한 개국공신의 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남조불교는 귀족들과 깊은 교우를 가짐으로써 마침내 ‘사문불경왕자론’이 대두할 만큼 승려의 지위가 강화되어 사회문화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남북조시대에는 사회혼란에 뒤따라 역병이 창궐한 경우가 많았다. 역병에 대한 조정의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던 데 반해, 의학지식을 구비한 승려들은 진맥이나 약으로 병자를 치료하고, 그들의 생사여부를 정확히 예견하기도 했다. 승려들의 치병활동은 의료지식이 부족했던 당시 백성들에게는 신이적인 능력으로 간주되었고, 불교의 대중화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한(漢)제국 이래 중국의 지배이념이었던 유교사상은 삼국시대와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더 이상 유일한 권위가 되지 못했다. 개인의 구제를 구하는 도교(道敎)와 윤회와 내세론을 바탕으로 서역에서 들어와 중국화된 불교 등 유·불·도 삼교가 공존하고 섞이면서, 중국인들의 정신 폭을 크게 넓히고 중국문명의 질을 심화시킨 데 이어, 그 종교·문화를 동아시아 세계 전체로 파급시켜 공유했다는 점에서 남북조시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더욱이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남북조불교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것을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 북조 전진 왕 부견이 보낸 순도, 아도 등의 승려로부터로, 백제의 경우 남조 동진에서 인도승 마라난타가 건너온 것부터로 알려져 있다.
각각 국가불교 특성을 지닌 북조의 불교가 고구려로, 귀족불교 특성을 지닌 남조의 불교가 백제로 전파되어 초기 한국불교의 바탕이 되었다는 데서, 북조-고구려, 남조-백제 간의 정치적 연관성뿐 아니라, 양 불교의 다른 특징들이 이후 어떻게 삼국에서 토착화, 융합되면서 ‘한국불교’란 정체성을 획득해 갔는가는 점 등은 앞으로 명확히 밝혀져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중국불교의 토착화가 이루어진 남북조불교의 특징에 대해 해명한 이 책의 성과는 결코 가볍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목차]
책을 내면서

제1부 北朝佛敎

제1장 神異僧 佛圖澄과 後趙佛敎
1. 머리말
2. 五胡의 混亂과 佛敎
3. 石勒과 佛圖澄
4. 石虎와 佛圖澄
5. 맺음말

제2장 北魏佛敎
1. 머리말
2. 北魏의 佛敎傳來와 初期佛敎
1) 北魏의 佛敎傳來
2) 道武帝의 北魏建國과 佛敎
3) 明元帝의 統一政策과 佛敎
3. 太武帝의 華北統一과 佛敎
1) 初期의 對佛政策
2) 太武帝와 崔浩, 寇謙之
3) 華北統一과 廢佛
4. 佛敎의 復興과 國家的 統制
1) 太武帝 末期 對佛政策의 變化
2) 文成帝의 卽位와 佛敎復興
3) 佛敎復興의 國家的 統制
5. 文明太后 執政期의 佛敎
1) 文明太后의 執政
2) 獻文帝時代의 佛敎
3) 孝文帝時代의 佛敎
6. 洛陽遷都 이후의 佛敎政策
1) 孝文帝의 洛陽遷都와 佛敎
2) 宣武帝와 佛敎
3) 孝明帝와 佛敎
7. 北魏末의 政治動向과 佛敎-河陰의 變을 中心으로-
1) 河陰의 變 前後의 政治的 動向
2) 北魏後期 洛陽佛敎의 팽창
3) 洛陽佛敎의 몰락
8. 맺음말

제3장 南北朝時代 佛敎敎團의 統制-北朝의 僧官制를 中心으로-
1. 머리말
2. 僧官制의 起源
3. 北魏의 僧官制
4. 西魏·北周의 僧官制
5. 맺음말
제4장 北周의 佛敎復興政策-宰相 楊堅을 중심으로-
1. 머리말
2. 宣帝의 卽位와 興佛
3. 宰相 楊堅時代의 佛敎復興
4. 楊堅의 즉위와 佛敎
5. 맺음말

제2부 東晋 및 劉宋의 佛敎

제1장 東晋의 明帝, 孝武帝와 佛敎
1. 머리말
2. 明帝와 佛敎
1) 明帝와 高僧의 관계
2) 明帝와 佛畵
3. 孝武帝와 佛敎
4. 맺음말

제2장 東晋의 穆帝, 哀帝와 佛敎
1. 머리말
2. 穆帝, 哀帝時代의 政治
3. 穆帝와 佛敎
4. 哀帝와 佛敎
5. 맺음말

제3장 東晋의 比丘尼-『비구니전』을 중심으로-
1. 머리말
2. 比丘尼의 受戒
3. 比丘尼의 活躍
4. 맺음말

제4장 劉宋의 建國과 佛敎
1. 머리말
2. 東晋末의 혼란과 劉宋의 건국
3. 劉裕와 沙門의 관계
4. 劉裕의 僧尼統制
5. 맺음말

제5장 劉宋의 文帝와 佛敎
1. 머리말
2. 元嘉의 治世
3. 文帝와 沙門과의 관계
4. 文帝의 佛敎統制政策
5. 맺음말

제6장 『高僧傳』 神異編에 관한 연구
1. 머리말
2. 현실정치의 참여
3. 虎災의 소멸
4. 치병활동의 참여
5. 맺음말

[저자 소개]
저자 이영석
1946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에서 출생.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단국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현 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논저
『 南朝貴族佛敎에 대하여-그 弊害를 중심으로-』
『 北魏太武帝의 華北統一과 對佛政策』
『 神異僧佛圖澄과 後趙佛敎』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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