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서적 1431..우리 절을 찾아서 (신대현 저) (해외배송 가능상품)

기본 정보
소비자가 15,000원
판매가 13,500원
적립금 27원
상품코드 P0000EWI
수량 수량증가수량감소

개인결제창을 통한 결제 시 네이버 마일리지 적립 및 사용이 가능합니다.

상품 옵션

(최소주문수량 1개 이상 / 최대주문수량 0개 이하)

수량을 선택해주세요.

위 옵션선택 박스를 선택하시면 아래에 상품이 추가됩니다.

상품 목록
상품명 상품수 가격
서적 1431..우리 절을 찾아서 (신대현 저) 수량증가 수량감소 (  27)
총 상품금액(수량) : 0 (0개)

이벤트

WISH PRODUCT LIST

 불교서적 1431..우리 절을 찾아서 (신대현 저)

저자 : 신대현
출판사 : 혜안
발행일 : 2010. 6. 1
페이지수/크기 : 411쪽 l A5 l
ISBN-10 : 8984943932 l ISBN-13 : 9788984943933

[책소개]
『우리 절을 찾아서』는 경주 사천왕사부터 인제 백담사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48곳의 절에 대한 이야기다. 왜적의 침입과 전쟁을 꿋꿋히 버텨낸 사찰의 모습과 역사의 상처와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유적들이 풍부한 사진으로 함께 실려 있다.

[출판사 서평]
사찰, 그 천년의 세월을 따라 찾아가는 길
우리 절을 찾아서 역사 속의 우리 사찰 이야기


한국인에게 절이란 참으로 독특한 공간이다. 오로지 한 종교의 건축물이나 불교의 의식과 신앙활동이 이루어지는 종교적 공간이라는 의미를 뛰어넘어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 우리 뿌리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시대를 축척한 건축이 있고, 공예와 회화가 있으며,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들은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네 삶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 삶의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뜨거운 남도 갯벌을 거쳐 한라산 천왕사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사찰을 20여 년 이상 찾은 한 불교학자의 낭만적인 여정이 드디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도서출판 혜안에서 출간된 신대현의 『우리 절을 찾아서』이다.

저자 신대현은 1993년부터 약 14년에 걸쳐 완성된 21권의 『전통사찰총서』를 비롯하여 『한국의 사찰현판』, 『한국의 사리장엄』, 『한국의 옥기 공예』 등 전통사찰과 전통문화에 관련된 논문과 저서들을 집필한 전문학자다. 그런 그가 2006년 이후 뉴욕 주립대에서 푸른 눈의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한국을 떠나 있던 시간 동안 가장 그리워했던 것은 거창한 정통문화나 학문이 아닌 법당이나 누각 안에 걸린 낡은 현판, 절 마당에서 발끝에 채이던 기와조각 같은 소박한 불교 유산이었다.
이 책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소홀하였던 것들을 대중들이 더 재미있고 쉽게 만나볼 수 있도록,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사찰, 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산과 사찰, 그리고 그곳에 있는 문화유산을 소개하기 위해 지난 1여 년 동안 매주 짐을 꾸린 그 소박한 여정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와 일화를 사찰에 담아내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역사의 대중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잊혀진 우리 것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고 기존의 고정 관념을 바꾸기도 하지만 역시 정확한 사료에 근거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정설인 양 비춰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뒤집어 본다면 오히려 우리 역사가 그만큼 오래되어 얘깃거리의 보고가 되었다는 말이 된다. 이는 우리의 불교사, 그리고 사찰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이야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 저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역사와 일화를 사찰이라는 공간에 담아서 펼쳐 보이려 했다. 물론 이는 우리 불교사의 현장이 참으로 흥미진진한 역사의 보고이자 상상력의 원천임을 잘 알고 있어서다.
『우리 절을 찾아서』에는 유물 하나하나, 각각의 유적마다 우리 불교사의 의미 있는 순간들이 새겨져 있고, 이것들은 지금 우리가 잊어버리거나 무심히 지나쳐버린 우리 불교사를 되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39곳 천년의 고찰을 바라보는 불교학자의 따뜻한 시선
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천년 고찰 등 48곳을 순례하고 사찰의 유래로부터 역사적 사실, 가람 배치, 각 건물의 의미 등 사찰과 관련된 모든 내용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경치 좋은 사찰을 찾아 놀이 삼아 떠나는 이들을 위한 길라잡이용 책은 아니다. 사찰은 부처님을 모신 집이기에 그 어느 건물보다 정성이 듬뿍 들어가 있다. 저자에게 사찰이란 지금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스님들과 대중들이 공부하는 현재진행형의 도량이기 때문에 그 건축양식보다는 처음 그 사찰을 지었던 마음, 사찰 안 곳곳에 담긴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읽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구체적인 여행정보를 전하기보다는, 고즈넉한 불탑이나 소소한 바람 소리, 합장하는 사람들 같은 크고 작은 풍경들에 시선을 주고 있다. 저자는 불교의 황금시대인 신라와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경주 사천왕사를 시작으로 강릉 굴산사지와 신복사지, 영광 불갑사, 보은 법주사, 여주 신륵사, 청도 운문사 일대 등 전국 곳곳을 답사하여 좋은 사찰, 훌륭한 문화재를 소개하고 그 문화재가 갖는 가치, 사찰에 얽힌 역사 이야기, 오늘날의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자신의 소중한 경험과 함께 들려주고 있다. 그 바탕에는 당연히 우리땅 우리것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따스한 마음이 깔려 있다.

이야기 하나, <아름다운 우리 문화를 만나다>
“관촉사 불상은 두 가지 면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우선 그 거대한 크기다. 높이가 18m에 달하여 신라와 고려를 통틀어 가장 크다. 또 하나는 신체비례의 파격이다. 얼굴이 유난히 커서 전체의 1/3쯤이나 된다. 거기다가 눈이나 코, 입 등의 표현도 지나치게 과장된 듯해서 신라불상에 비해 어딘가 모르게 섬세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준다. 바로 이 점은 학자 간에도 고려의 불교미술을 정의하는 중요한 설명, 다시 말해서 신라에 비해 조각 면에서 현저하게 퇴보한 결정적 증거로서 즐겨 인용되곤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고려의 불교미술 중 유독 조각기법이 신라보다 눈에 띄게 떨어졌다는 것은 정말 설득력 있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가? 나는 오래 전부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중략>
고려의 불상을 자세히 보라. 비까번쩍한 ‘꽃미남’은 아니지만 준수하고 튼실한 장년의 정겨운 모습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가 있다. 관촉사 보살상의 얼굴은 이마가 상대적으로 좁고 턱이 넓으며 코와 귀, 입을 다소 크게 나타냈다. 또 눈은 양 옆으로 길게 새기고, 귀 역시 어깨에까지 닿을 만큼 길다. 이렇게 얼굴을 크게 강조한 것은 바라보는 사람들의 위치를 고려해서다. 법당이 아닌 야외에 불상을 놓은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비좁은 법당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사람들이 격의 없이 바라봄으로써 부처님의 덕을 느껴보라는 의미다. 그러려면 불상을 팔등신 미인마냥 조각해서는 안 된다. 멀리서도 부처님을 알아보기 위해선 신체비례를 무시하고서라도 얼굴을 커다랗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이 점이 고려 불교미술의 특징이다.
세부표현의 아름다움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을 더욱 중요한 가치로 여긴 점. 이런 관점에서 고려의 불교미술을 이해하면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런 뜻에서 관촉사의 불상은 고려 불교조각이 퇴화된 것이 아니라, 고려시대 불교가 더욱 대중화되어 갔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작품이다.” (논산 관촉사)

“그래서 나는 사찰이 지니는 아름다움의 요소를 이렇게 정리해 보고 싶다. 앞에서 말한 주변 경관이 멋있어야 하는 건 기본이고, 여기에 더해서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물이나 그림과 조각 등에서 미적인 기준을 넉넉히 충족하는 ‘작품’이 많다는 건 그 사찰의 격을 높이는 전제조건이다. 두 번째로 그 절에서 머물렀던 인물 중 수행과 대중 교화에 남달랐던 분들이 많으면 이 역시 사찰의 아름다움에 한 층 격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가장 중요한 조건이면서도 어찌 보면 종합적인 것인데, 그 사찰의 역사가 한국불교사(더 나아가 한국의 역사에)에서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화룡점정일 터다.” (여수 흥국사)

“특히 이걸 눈여겨본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는데, 내소사 마당은 전부 5단(段)으로 구성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대개 대웅전이 있는 공간까지 많아야 3단 정도에 그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내소사의 그것은 특이하다. 그런데 각 단마다의 축대가 아주 나지막하고 겸손한 사람마냥 얌전히 쌓여 있어 사람들은 마치 계단 하나 밟고 올라가듯이 쉽게 넘어서면서도 자신이 어느새 대웅전 앞에까지 와 있다는 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각 단의 축대가 이렇게 소담스럽다 보니, 우리나라 대부분 사찰 마당이 수직적인 데 비해 내소사의 그것은 수평적 공간에 가깝다. 이 같은 공간분할은 정말 대단한 건축적 안목이 아니고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찰 건축미의 또 다른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부안 내소사)

이야기 둘, <상상의 역사를 꿈꾸다>
“장구한 역사 중에는 역사와 신화가 한데 섞여 있음을 종종 보게 된다. 역사와 신화가 한데 얽혀 구분이 되지 않고, 또 굳이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그런 경우다. 역사는 지혜를, 신화는 꿈을 선사한다. 이 둘이 서로 대립되는 불편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신화와 역사를 굳이 구분해서 나누려는 것도 사람들의 얄팍한 앎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경주 감은사)

“나는 사천왕사지에는 당군을 격파하기 위한 방책과 전술을 연구하던 기구, 일종의 국방연구소가 설치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상상하곤 한다. 685년, 당의 황제는 수년 전 풍랑으로 인해 군사작전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 배경에는 사천왕사에서 행한 비법이 있었음을 알고는 사신을 보내 사천왕사를 방문해서 진상을 알아오도록 했다. 헌데 신라는 사신이 사천왕사에 가는 것을 매우 꺼렸다. 그래서 사천왕사 맞은편 자리에 급히 절을 짓고 여기를 사천왕사라고 거짓으로 둘러대기도 했던 것이다(이 절은 나중에 망덕사가 된다). 사천왕사를 보여주어서는 안 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설치된 비밀기관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경주 사천왕사)

“고란사는 백제 왕들이 노닐기 위해 지은 정자였다는 설도 있고, 왕실 사람들만 가는 이른바 내불전(內佛殿)이었다는 설이 있다. 헌데 나는 이 두 가지 설이 모두 못마땅하다. 백제 왕들이 백마강에서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은 정자가 사찰이 되었다는 건 너무 억지처럼 들려서다.
불교를 숭상한 백제에서 정자를 절로 쓸 리 있겠는가. 또 내불전이라는 말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비록 여기서 궁이 지척이라고는 해도 굳이 강까지 건너야 하는 이 자리에 하필 내불전을 지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내불전은 글자 그대로 궁궐 안에 있어야 이치에 맞는다. 아마도 백제왕 또는 왕실과의 연관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려다 보니 나온 억측이 아닌가 싶다. 내 생각엔 고란사가 창건된 가장 큰 이유는 백제의 안위였을 것이다.” (부여 고란사)

“수종사를 둘러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세조는 왜 그렇게 사찰을 자주 다녔을까? 숭유억불의 시대건만 그의 자취가 알려진 곳만 해도 이곳 수종사를 비롯해 양평 용문사, 강원도의 월정사 및 상원사, 석불입상이 있는 파주 용암사 등 꽤 된다. 세조의 초상화가 비전되었던 해인사도 세조와 무관할 리가 없다. 아마도 그는 죄의식에 시달렸을 것 같다. 나이 어린 조카인 단종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과정에서 결국 단종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이런 정변을 극력 반대했던 사육신을 비롯한 숱한 신하들을 역시 처형하거나 유배시켰던 일에 대해 상당한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 같다. 이런 죄의식을 씻고 또 자신 때문에 유명을 달리하거나 한평생 괴롭게 살아간 많은 이들을 위해 그토록 자주 절을 찾아다녔던 게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남양주 수종사)

이야기 셋, <역사를 되짚어보다>
“사실 무왕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산 군주도 드물다. 그의 생애는 역사와 설화가 한데 섞인 채 전해진다. 무왕이 선화공주와 결혼한 것부터가 그렇다. 선화공주는 신라 진평왕의 딸이다. 백제의 왕이 어떻게 신라 왕녀와 결혼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의 출생과 왕위 등극에 관한 이야기는 차라리 환영을 보는 것 같다. 정사의 기록에는 그가 29대 법왕의 아들이라거나 혹은 27대 위덕왕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설 등이 있다. 하지만 야사에는 어머니가 용과 관계해서 그를 낳았다고 전한다. 사실 어머니가 용과 관계해서 출생했다는 설화는 고대사에 심심찮게 보인다. 용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매우 지체 높은 신분이거나 세상에 알려져서는 곤란한 정치적 거물인 데 비해 어머니는 미천한 집안 출신일 때 흔히 쓰는 수사법에 다름 아니다.
신화의 내용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부정해서는 안 되고, 그 안에 감추어진 상징과 의미를 들여다보는 게 바로 신화를 읽는 독법(讀法)이다. 이래야 신화가 싱싱해지고 살아 숨 쉬게 된다.” (익산 미륵사)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런 바가 있다. 사학계에서 말하는바, 개태사나 관촉사 모두 후백제를 멸망시킨 위업을 기념하기 위한 사찰이라는 주장 때문이다. 얼마나 해괴한 주장인가. 아무리 후삼국 간의 명운을 건 전쟁이었기로서니 그래도 같은 민족 간인데, 승자의 입장에서 패전국의 ‘멸망을 기념하여’ 절을 지었다는 게 정서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용납될 수 있는 일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파괴의 정서에 자비를 최고 가치로 내건 불교가 나섰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상대에 대한 살육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적 대찰을 지었다는 주장이 정설인 양 통용되고 있는 게 작금의 학계다. 이런 몰염치하고 비이성적인 해석을 교과서에 실어서는 안 된다.” (논산 관촉사)

“ ‘제주불교’는 제주불교만의 독특한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제주는 뭍이 아니고 섬인지라 예로부터 이곳만의 풍습과 습속이 이루어져 왔던 것인데, 이는 민속학상 그리고 문화인류학상 아주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제주불교를 이해할 때는 일반적인 시각에서가 아니라 제주만의 상황과 환경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그럴 때에야 제대로 된 제주불교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같은 제주만의 특수성 중 하나가 사찰건축이다.
제주에는 목조 기와집으로 지은 법당이 많지 않다. 전통 목조건축에 대한 무관심이나 무지 때문이 아니라, 기후로 인해 육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상하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염분을 가득 머금은 습기가 사시사철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탓에 목조건축은 지탱해 나갈 수가 없다. 제주의 명물인 바람이 목조건축에는 치명적 독소인 셈이다. 그런 탓에 육지에서라면 100년을 끄떡없이 버틸 건물도 이곳에서는 몇 년을 제대로 배겨낼 수가 없다. 제주불교를 이야기하면서 전통 목조 법당이 없는 것을 탓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제주 사찰 중에는 돌과 시멘트로 지은 법당을 많이 보게 된다. 비록 목조는 아닐지라도 모양만큼은 전통 건축양식을 유지하려 하지만 아무래도 이도저도 아닌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런데 지난 5월 낙성된 천왕사 대웅전은 시멘트 건물임에도 목조가옥 못지않게 전통미를 충실히 계승하면서 지형에 맞는 창의성을 발휘했다는 평이 자자했다. 또 하나, 이렇게 지은 법당 안의 닫집 역시 보기 드물게 잘 짠 작품이라는 소식도 함께 들려왔다.” (한라산 천왕사)

“문화재라는 게 연조만 가지고 따질 일은 아니다. 얼마나 오래되었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잘 만들어져야 하고 또 작품 속에 시대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어야 진정한 문화재라고 할 만하다. 나는 여기에 아름다움과 기능성이야말로 문화재의 품격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라고 여긴다. 한편으로, 현대작품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문화재는 처음부터 문화재로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만들어지는 작품도 백 년, 이백 년이 지나 문화재가 될 수 있다. 말하자면 현대의 작품들은 모두 잠재적 문화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문화재 방면으로 시선을 좁혀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불교문화재의 진정한 가치를 우리 스스로 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만든 작품의 가치를 몇 세대 뒤의 후손들에게 미루지 말고 우리 자신이 직접 따져보자는 것이다.” (한라산 천왕사)

저자는 욕심이 많다. 보여주고 싶은 것도 정말 많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차고 넘친다. 여기에 실린 많은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것들이지만, 아주 오래되어 흔적만 남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평생 모르고 넘어갈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이제 막 태어나서 문화재가 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려 역시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저자에게는 이 모든 것이 지나온 우리 역사와 앞으로 만들어나갈 역사를 품고 있는 것들로서 소중하고 또 소중한 것들이다. 많은 사진들을 정성들여 고르고 골라서 싣고 현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지고 숨겨져 있던 것들을 꺼내어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담뿍 담긴 이 책이 우리것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독자들에게 소중한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목차]
프롤로그

경주 사천왕사
김제 금산사
익산 미륵사
김해 초선대와 파사석탑
울산과 경주의 대왕암
경주 이견대와 감은사
서산과 태안의 마애삼존불, 예산 사면석불
강릉 굴산사지와 신복사지(1)
강릉 굴산사지와 신복사지(2)
원주 거돈사지와 법천사지
서울 봉은사
화성 용주사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과 사리장엄
구미 도리사
부여 왕흥사
부여 능산리사지
부여 고란사와 낙화암
영광 법성포와 마라난타사
영광 불갑사
영천 은해사와 거조암
남양주 수종사
양평 용문사와 파주 용미리 석불상
제주 한라산 천왕사(1)
제주 한라산 천왕사(2)
연산 개태사
논산 관촉사
보은 법주사(1)
보은 법주사(2)
부안 내소사
고창 선운사
여수 흥국사(1)
여수 흥국사(2)
남해 용문사
수원 수원사
고성 운흥사
밀양 표충사
안동 봉정사
여주 신륵사(1)
여주 신륵사(2)
군위 인각사
청도 운문사
인제 백담사

  • 배송정보
  • 배송 방법 : 택배
  • 배송 지역 : 전국지역
  • 배송 비용 : 4,000원
  • 배송 기간 : 2일 ~ 5일
  • 배송 안내 : ...◐ 빠른 배송이 되도록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 주문제작 및 인쇄건은 배송기간이 각각 다르오니 전화문의 바랍니다.
    ...◐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 REVIEW

    구매하신 상품의 후기를 남겨주세요.

    게시물이 없습니다

    상품문의하기모두 보기

    Q&A

    상품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문의해 주세요.

    게시물이 없습니다

    상품문의하기 모두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