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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021..달라이 라마 평전(양장) (클로드 B. 르방송 저) (해외배송 가능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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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서적 021..달라이 라마 평전(양장)

 

저자 : 클로드 B. 르방송 저

역자 : 박웅희

출판사 : 바움

발행일 : 2008. 5. 15

페이지수/크기 : 456페이지 / 128*182mm(A6)

 

티베트의 영적·정치적 지도자를 넘어 인류의 스승이 된 신왕神王의 일대기!

지난 3월 14일 티베트자치주에서는 반중국 인민봉기 49주년을 맞아 티베트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하고(물론 당연히 유혈 진압되는 결과를 맞고 말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국 중심으로 반중국 시위가 일어났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4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서 중국의 반티베트 시위대의 폭력사태가 발생해 외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이제 티베트 독립에 관한 문제는 중국과 티베트 사이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문제가 된 것처럼 보인다.
이 시점에 점점 긴밀해지는 국제사회 속에서 ‘도대체 티베트는 어떤 나라이며, 그 나라의 영적·정치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티베트는 1950년 이후부터 중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오고 있으며, 달라이 라마는 1959년 인도로 망명해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구성한 이후 오늘날까지 비폭력 독립운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중국은 티베트가 본래부터 중국의 일부분이었으며, 티베트 민족 문제도 중국 내의 소수민족 문제의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고유의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독립 국가였으며, 자신은 그 국가의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주권자라고 주장한다.
힘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법칙에서 분쟁의 양당사자 중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줄기차게 비폭력 독립운동을 해온 달라이 라마와 그 지도자의 뜻을 존중해 지금까지 평화적으로 독립운동을 해온 티베트라는 나라는 재조명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

서구 사람들 중 달라이 라마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 이 책의 저자 클로드 르방송은 현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를 좇아 라싸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까지 갔다. 그녀는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고 여러 날 여러 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비상한 생애 이야기를 밝혀냈다.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난 씩씩한 아이가 14대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인정받은 과정과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열악한 망명정부를 이끌고 비폭력 독립운동을 전개해온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달라이 라마의 생애와 됨됨이, 티베트 사람들이 그를 그토록 믿고 따르는 이유, 티베트 불교의 역사와 특성, 환생을 통한 대 잇기, 토착 종교의 흔적인 신탁神託의 신통력, 티베트의 대의가 옳은가 중국의 주장이 옳은가, 달라이 라마의 미래 전망, 비폭력 노선의 실효성, 칼라차크라 입문식과 탄트라 수행의 신비, 달라이 라마 이후 티베트의 운명 등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솔직히 지금까지 달라이 라마 평전은 많았다. 하지만 이 평전만큼 오늘날의 티베트 문제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제공하고 있고, 달라이 라마의 종교 사상, 정치적 견해, 그리고 인류의 스승으로서의 그의 참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평전도 없다.

한마디로 이 책은 달라이 라마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개인사, 그리고 범인류적인 스승으로서의 면모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며, 티베트에서 절멸의 위기에 몰린, 고도로 발달한 불교 전통에 토대를 둔 한 중요한 문명을 생생히 그리고 있다. 특히 티베트의 제한적 자치를 요구하는 달라이 라마의 정치 강령인 중도中道의 참의미를 밝히고, 티베트에서 중국 당국이 자행해 온 인권 탄압의 실태와 그들이 티베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진정한 이유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사실 이 책을 미리 읽었다고 한다면 달라이 라마가 이번 티베트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 일간지에 기고된 리영희 선생의 글 또한 시사하는 바 매우 크다.

…… 달라이 라마의 제안이 좋은 것 같아요. 일정기간 동안 자치를 하면서 새로운 방법이 창출될 수도 있지. 달라이 라마는 인도의 간디를 연상케 해. 이번에 달라이 라마를 보고 간디를 연상하면서 비폭력 평화, 이 도덕주의적?평화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티베트인들로 하여금 무기를 들고 중국에 대항하라고 선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게 좋은 해법이겠나.

어려운 처지 속에서도 한 사람의 불자이자, 만인을 보살피기 위해 지상에 내려온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서 심지어 적국인 중국까지도 미워하지 않고 비폭력 운동을 전개해온 달라이 라마의 일대기는 정치적 혹은 민족적 테두리를 뛰어넘어 현대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서문 / 머리말

제1부 눈사자의 무대
부다가야의 묀람 대기도회 / 신화와 역사

제2부 달라이 라마라는 한 티베트 승려의 초상
하나의 생, 여러 생 / 다시 찾은 라싸 / 달라이 라마의 하루 / 한 승려의 웃음
고귀한 고독 / 사자좌에 앉은 흰 연꽃의 주 / 세계를 누비며

제3부 삼세와 시방
샴발라 가는 길 / 시간의 완성

옮긴이의 말 / 부록 :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인용문 출처, 참고 문헌

 

1939년 7월, 조사와 간택과정을 심사하기 위해 열린 청문회에서 이 일에 능한 라마들과 네충사 신탁승이 첸레지의 대리인이 티베트 백성에게 돌아왔음을 확인했다. 이제 전통에 따라 즉위하는 일만 남았다. 사자들이 영국령 인도의 정부, 베이징, 네팔 왕, 시킴과 부탄의 번왕들에게 파견되어 그 중대한 소식을 알리고 그들을 즉위식에 초대했다. 오늘날 그 당시의 일을 물으면, 텐진 갸초는 두 눈에 웃음을 지으며 자기는 전생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치른 시험의 내용은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몸에 묶인 새로운 기억들이 더 강합니다. 과거 사실들은 희미해지고 모호해져갑니다. 지금은 어릴 적에 그런 회상을 할 수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전생의 일들을 회상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말을 시작하는 서너 살 때이지요. 그때가 과거의 일들을 기억해내기에 가장 알맞은 순간입니다. 그 뒤로는, 새로운 신체구조가 발달할수록 그 능력이 줄어듭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지력과 정신적 성숙도에 달렸습니다. 사람에 따라 한 생이나 두 생 혹은 세 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 생까지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무한한 수의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14대 달라이 라마는 자신이 항상 라싸로 가고자 하는 바람을 표명했다는 것과, 누가 와서 라싸로 데려다주기를 기다렸다는 것만은 분명히 인정한다. 그는 나무 조각에 걸터앉아 자신이 먼 흙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상상을 했으며, 어머니에게도 늘 자기는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세라사의 조사단이 집에 찾아왔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 하나의 생, 여러 생 중에서)

뉴델리에서 중국 공산정권의 대사와 티베트 정부의 대표들 사이에 협상이 계속되고 있던 1950년 10월 7일, 마오쩌둥의 군대가 ‘세계의 지붕’에 공격을 개시했다.
온 티베트가 이제 자기 민족과 한 몸인 젊은이를, 이 나라의 ‘고귀한 수호자’인 달라이 라마를 바라보았다. 신탁승들의 조언을 듣고 대라마들의 지지를 얻어, 카샤는 아직 성년에도 이르지 못한 ‘연꽃의 주’에게 나라를 맡아달라고 간청했다. 이 학구적인 청년은 시간이 나면 망원경을 들고 포탈라 궁의 후미진 곳으로 가 자기에게는 금지된 속세의 일상사들을 내려다보기나 하다가 느닷없이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던 현실의 한복판으로 밀어올려졌다.
……
“그때 나는 불과 열여섯 살이었고, 종교교육을 마치는 것도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바깥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정치적 경험도 없었습니다. 다만, 내 무지와 아직 배울 것이 많다고 깨달을 만큼은 철이 들었지요. …… 나는 달라이 라마로,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이 아무런 이의 없이 기꺼이 순종할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국회도 내각의 요청을 지지했습니다. 상황이 중대하다는 것을 안 나는 더는 내 의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의무를 받아들이고, 청소년기와 이별하고 지체 없이 최선을 다해 조국을 이끌 준비를 하는 것이 내 본분이었어요. 공산주의 중국의 거대한 힘에 직면해 있으니 어쩝니까. 일말의 두려움이 없진 않았지만, 나는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전통적 의식을 거쳐 전권을 부여받은 겁니다.”
(/ 하나의 생, 여러 생 중에서)

캄파 저항전사들이 사방을 경계하며 달라이 라마의 길고도 험한 망명길을 호위했다. 종종 밤에도 이동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추적이 붙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혹독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일행은 아삼 변경의 추타오를 경유해 3월 30일 드디어 인도 영토에 도착했다. 도중에 비밀요원의 작은 야전무전기를 통해 라싸 폭격과 수천 명의 학살 등 흉보를 접했고, 이따금 비상경보에 놀라기도 했다. 직후 수천 명의 티베트인들이 대탈출을 시작한다.
그 순간 이후, 세상에 두 개의 티베트가 공존하면서 너무나 미세해서 종종 보이지도 않는 모세관을 통해 소통했다. 원래의 티베트는 그 장려한 자연환경의 아름다움 속에 침잠한 채 자신의 깊은 상처를 돌보면서 무한한 시간의 한 조각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또 다른 티베트, 곧 피난민과 망명자들의 세계는 더 작고 비참하도록 곤궁해 처음에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다음에는 다시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 티베트는 자신의 굳건한 신앙을 중심으로 단단히 결속하고 그 스승들 주변에 응집했다. 빈번하게 닥치는 역경 속에서도 고단한 생활에 적응한 이 공동체는 티베트의 영원한 본질을 누구보다 철저히 보증하는 승려 텐진 갸초를 거울삼아 재편됐다. 평화주의자로서는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병사로 변장해 야밤에 노부링카 궁을 떠났을 때, 새로운 화신으로 난 ‘고귀한 수호자’는 스물네 살에 불과했다.
(/ 하나의 생, 여러 생 중에서)

텐진 갸초는 모든 면에서 승리자다. 그는 이전의 어느 달라이 라마 못지않게 티베트에 살고 있다. 그 자신이 말하듯, 중국인들은 티베트 인민에 대한 무자비한 압제를 통해 오히려 그를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달라이 라마로 만들었다. 그는 아주 오래 자기 땅을 떠나 있음으로써, 1959년에 시작된 긴 망명생활을 계속함으로써 오히려 어디에나 있으면서도 아무데도 없는 오묘한 존재, 은밀한 식별표지요 승리의 맹세이며 암호요 영속성의 증표가 된 것이다. 저 트랜스히말라야 고원에서, 그는 공간 속에 스며들어 그 까마득히 높은 지역을 구석구석까지 오가고, 그의 환한 웃음은 모든 승원과 마을에 울린다.
(/ 다시 찾은 라싸 중에서)

오늘날 다람살라는 인도의 ‘작은 라싸’로 통한다. 티베트인들은, 외관은 ‘신들의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달라이 라마가 사는 곳에 포탈라 궁도 있다는 설명을 방문자가 이해할 때 기쁨의 미소를 짓는다. 재건은 했으나 얼개는 그대로인 환경에서, 영적 지도자와 측근들이 든 건물들은 산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포탈라 궁의 위용은 추억에 불과하다 해도, 그곳의 공기는 상쾌하고 대기는 온화해 지나는 나그네들을 따뜻이 맞이한다.
(/ 달라이 라마의 하루중에서)

우리가 어떤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을지라도 유감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간은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죽음과 노화와 질병에 직면해야 합니다. 힘에 부치더라도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괴로움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뭘 하려고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다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문제를 더 만들어냅니까? 무의미한 일입니다. 슬프고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정말로 어리석습니다. 우리가 다른 태도를 취한다면, 그리고 원래 이데올로기가 봉사하게 되어 있는 기본적인 인간애를 고려한다면 피할 수 있는 상황일 때는 특히 그래요.
(/ 달라이 라마의 하루 중에서)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바랍니다. 큰 도회에서, 나라의 심장부에서, 외진 마을에서,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무슨 목적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을 성취하려고 애쓰는 것이며, 그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행복을 추구하면서 올바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피상적 수준에 지나치게 열중해서는 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위기와 공포가 우리 주변 도처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을 통해 고도의 물질적 진보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은 필요한 만큼 유용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적 진보를 외적 진보와 비교해보면, 전자가 부족하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여러 나라에서 살인, 암살, 테러 등 위기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도덕의 쇠퇴와 범죄의 증가에 대해 불평합니다. 우리는 물질 영역에서 큰 진보를 이루었고 계속 진보하고 있지만, 내적 발전의 견지에서도 진보를 이룩하는 것은 똑같이 중요합니다.
고대에는 전쟁이 벌어지면 그 영향(파괴의 양)이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바로 그 물질적 진보 때문에 그 영향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나는 히로시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어난 핵폭발에 대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든, 그것은 그곳에 가서 눈으로 직접 보고 그 괴로움을 이기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무기입니다. 비록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불구대천의 원수?여기더라도, 더 깊은 수준에서는 적도 인간입니다. 그 역시 행복을 바라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습니다. 히로시마를 보고 그 순간의 그 도시가 어떠했을지를 깊이 생각함으로써 나는 분노와 증오는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훨씬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 고귀한 고독 중에서)

불교의 두드러진 특징은 형식상의 종교적 면모보다 본질상의 인문주의가 강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불교는 삶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정의하고 일련의 해결책을 제시하려 합니다. 그러면서도 세계의 대다수 종교들과 달리 신(God)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두지는 않습니다. 불교는 인간에 대해 말하며, 인간이 완성에 이르는 방법을 말합니다. 많은 종교들이 신이라는 개념에서 시작한 다음 그것을 창조와 진화 등 존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용합니다. 그것은 쉬운 대답이지만, 논리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붓다는 그것을 피하고 철두철미하게 이성에 기초한 교의를 제시하려 애썼던 것입니다.
붓다는 신 개념의 사용을 삼감으로써 그로부터 도출되는 여러 가지 미심쩍은 결론들도 피했습니다. 한 예로, (그런 종교에서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왜소하게 느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들은 신을 섬기다 언젠가 그의 발치에까지 이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와 동등한 존재는 결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은 하나의 실재이며, 우리 인간은 영원히 그분에 비해 열등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띤 그의 피조물로 제시됩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실행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창조주요 후원자에게 도전한 결과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이기주의에 맞서 싸우기에 매우 좋고 도의와 헌신과 친절을 실행하기에도 항상 좋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평가하지 않을 위험이 있습니다. 게다가 신에 기초한 종교들은 대개 ‘신의 말씀’이 이성에 반하더라도 거부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 태도는 철학적 탐구의 발전을 질식시키기 쉽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 이론 때문에 직접적으로 제기되는 철학적 문제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신이 전능하다면, 그리고 그가 모든 것을 창조했다면 그는 또한 괴로움과 불의도 창조한 셈이 됩니다. 우리는 이로부터 그가 잔인하고 극히 사악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들볶고 괴롭히려는 치밀한 계획 하에서 자식을 낳은 어머니처럼 말이지요.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붓다는 오직 이성에만 기초한 교의를, 온전히 인간의 문제와 목표에만 초점을 맞춘 길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사람은 제각기 자신의 현생에 책임이 있다고 선포하고, 우리가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나 완성으로 나아가는 것을 장려하고 촉진하는 일련의 방편을 제공했습니다. 자기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은 인간 자신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자신의 성장이나 퇴보는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붓다들은 조물주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진정으로 들을 마음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스승이요 안내자일 뿐입니다. 그들의 충고대로 행하고 않고는 그 개인에게 달렸습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우리에게 있으며 다른 어떤 사람, 어떤 것에도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돕지 않으면 시방삼세의 붓다들조차 우리를 도울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누군가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그가 이미 그렇게 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 사자좌에 앉은 흰 연꽃의 주 중에서)

내게는 현대세계의 전반적 분위기가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에 대해 전반적인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반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외적 압력이나 적대적 상황을 구실로 잘못된 길을 채택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그것은 확실히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태도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런 태도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는 새 세대에게 커다란 희망을 갖고 있어요. 모든 사람의 목표인 행복을 추구할 때, 그 방법은 대단히 많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선호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신앙생활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고 어떤 정부체제나 이데올로기?기치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길을 찾고 있으며, 날마다 더 작아지고 있고 우리가 서로에게 갈수록 더 의존하고 있는 우리 세계에서는 보편적 의무감을 향상시키는 것이 몹시 중요해 보입니다.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강한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모든 영적 가치는 진정한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이 분야에서 수행할 큰 역할이 있으며, 맡게 될 특별한 임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평화는 모든 개인의 내적 평화를 거쳐서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샴발라 가는 길 중에서)

중국의 국부國父 쑨원孫文이 티베트와 몽골과 만주를 외국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오쩌둥도 1930년대에 아직 권력을 잡지 못하고 한창 싸우고 있을 때는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했습니다. 몇 년 뒤 1954년에 내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마오쩌둥은 내게 우리가 가난하고 후진적인 동안은 중국이 우리를 돕겠지만 그뒤에는 우리가 중국을 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인들은 제국주의자나 식민주의자로 티베트에 간 것이 아니라 ‘해방자’로 갔다고 선전합니다. 한 국민의 권리를, 그들의 운명을 그들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 무슨 해방입니까?
중국의 지배 하에 티베트 인민이 겪은 막대한 물질적 손해는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우리의 5천 승원에 축적된 부가 약탈당하고, 중국으로 빼돌려졌습니다.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로 쓰인 귀중한 필사본들이 돌이킬 수 없이 유실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현재 중국인들은 뻔뻔하게도 자기들이 지난 30년 동안 티베트의 발전을 위해 3백억을 썼다고 주장합니다. 자기들이 30만 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1백70만에 가까운 관리들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왜 말하지 않을까요?
정말로 그들이 떠날 시간이 오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돌아가서 자기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것은 티베트인들은 물론 자신들에게도 가치 있는 결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고, 우리 문화와 우리 기준에 의해 살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민족은 그럴 권리가 있으며, 어떤 민족도 다른 민족을 식민화할 권리는 없습니다.
(/ 시간의 완성 중에서)

달라이 라마는 대화 가능성을 되살리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5조 평화안을 제시했다.
“이 5조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강조한다.
“나는 그전에도 각기 다른 기회에 그것들을 제시했지만, 한데 모아놓으면 아마 대화의 단초를 제공할지 모릅니다. 그 5조는 티베트 전체를 평화지대로 바꿀 것, 티베트 민족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중국인 이식 정책을 포기할 것, 티베트 인민의 기본권과 민주적 자유를 존중할 것, 티베트 영토를 핵무기 제조를 위한 장소나 핵폐기물 저장을 위한 장소로 이용하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티베트의 환경을 복원하고 보호할 것, 티베트의 장래 지위에 대한 그리고 티베트 인민과 중국 인민 사이의 관계에 대한 협상을 시작할 것 등입니다.
……
좀더 두고 봅시다. 내 제안들은 장기적으로 해결할 것들입니다. 이만하면 중국인들도 티베트인들에게 질릴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들이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낫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상황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이해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양측이 노력을 해야 하고, 그러면 어느 정도 신뢰가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티베트 인민의 목숨이 중국군의 총칼에 달려 있는 한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견해와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중국인들에게 접근하는 즉시 그들은 그것을 자기 나라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곧바로 방어 자세를 취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티베트인의 관점은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내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소리 높여 말하는 것입니다. 세계 사람들이 듣고 진상을 알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 시간의 완성 중에서)
 

 

클로드 B. 르방송 [저]

클로드 B. 르방송은 티베트와 불교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프랑스의 동양학자이자 저널리스트다. 티베트를 위한 100인 위원회(The Committe of 100 for Tibet)의 일원이기도 한 그녀는 현재 달라이 라마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다. 이제까지 그녀가 집필한 책으로는 [라싸에 이르는 길―티베트 여행기] [달라이 라마가 말씀하시길] [텐진 갸초―달라이 라마의 초기 생애] [티베트 불교의 상징들] 등이 있다.

박웅희 [역]

1985년 전남대학교를 나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한 바 있으며, 현재는 기획·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아시모프의 바이블·구약편] [아시모프의 바이블·신약편] [담배, 돈을 피워라] [한잔의 유혹] [떠오르는 태양] [컴플렉스,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 [갈라파고스] [70일간의 미술 여행] [어플루엔자] [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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