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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2759..불교파시즘(선은 어떻게 살육의 무기가 되었나?) (해외배송 가능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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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서적 2759..불교파시즘(선은 어떻게 살육의 무기가 되었나?) 

저자 :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 역자 : 박광순
출판사 : 교양인
발행일 : 2013. 04. 22
페이지수/크기 : 452쪽 |153 * 225 mmㅣISBN-10 : 8991799833 | ISBN-13 : 9788991799837
원서 : Zen war stories./Victoria, Daizen

[책소개]
『불교 파시즘』은 베일에 가려져 온 일본 군국주의와 불교의 공모를 밝히는 충격적 보고서다. 불교학자이자 오랫동안 수행한 선불교 승려인 저자는 불교의 가르침이 교묘하게 일그러져 ‘오남용’된 역사를 날카롭게 고발한다. 전쟁에 가담한 승려들, 불교를 신봉한 군인들의 무섭도록 생생한 목소리를 발굴하여 지울 수 없는 과오의 증거로서 제시한다.

[출판사서평]
불교 파시즘
선(禪)은 어떻게 살육의 무기가 되었나?

“자비심으로 생명을 빼앗는 것보다 더 나은 보살행은 없다.”
- 승려 난텐보

선에는 특별한 교리도 철학도, 일련의 개념도 지적인 법칙도 없다. ……
선은 아나키즘이나 파시즘, 공산주의나 민주주의, 무신론이나 관념론,
혹은 어떤 정치적·경제적 독단론과도 결합할 수 있다.
- 승려 스즈키 다이세쓰 데이타로

평화의 종교가 어떻게 전쟁 이데올로기로 변신했을까?
깨달음의 교리가 어떻게 윤리와 양심을 마비시켰을까?
일본 파시즘과 불교가 맺은 은밀한 유착을 파헤친다!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에 힘입어 병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생(生)과 사(死)가 다르지 않기에 슬퍼할 필요가 없었다. 죽음은 그가 쌓은 업(業)에 의해 예정된 일이었고, 전사한 병사는 내세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었다.
제국주의 야망이 점령한 전시의 일본에서 불교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정신적 무기’가 되었다. 이름 높은 선사들이 자진해서 군대의 나팔수로 나섰고, 극우파와 손잡고 천황 숭배를 부르짖었다. 종교의 교리와 역사가 거침없이 왜곡되고 살생을 금하는 계율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불교의 무아관(無我觀)과 생사불이론(生死不二論)이 뒤틀리고 타락하면, 군국주의 파시즘의 광기와 유착해 대량 학살과 집단 자살의 아수라로 빠져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전쟁을 지휘한 군 수뇌부도 불교를 적극 받아들여 ‘활용’했다. 병사들은 스님이 쓰는 공양 그릇을 본뜬 밥그릇으로 식사했다. 돌격을 앞둔 자살 특공대는 절에 가서 선을 수행하며 두려움을 잊었다. 패전 뒤 사형수가 된 전범들은 과거를 반성하는 대신 정토 왕생을 꿈꾸며 구원을 기대했다.
《불교 파시즘》은 베일에 가려져 온 일본 군국주의와 불교의 공모를 밝히는 충격적 보고서다. 불교학자이자 오랫동안 수행한 선불교 승려인 저자는 불교의 가르침이 교묘하게 일그러져 ‘오남용’된 역사를 날카롭게 고발한다. 전쟁에 가담한 승려들, 불교를 신봉한 군인들의 무섭도록 생생한 목소리를 발굴하여 지울 수 없는 과오의 증거로서 제시한다. 인류 역사상 끊임없이 자행되어 온 종교와 정치의 위험한 결탁에 매서운 경종을 울린다.

일본 불교계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미국인 승려의 충격적 고발

불교는 비폭력과 평화의 종교로 널리 인정받아 왔다. 왔다. ‘불살생(不殺生)’을 가장 중요한 계율로 가르치며, 기독교나 이슬람교와는 달리 종교를 내세워 전쟁을 일으킨 일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불교 파시즘》이 밝히는 20세기 일본 불교의 부끄러운 역사는 ‘평화의 종교’라는 불교의 자부심을 무색하게 만든다. 전쟁과 살인을 지지하고 나라를 위해 죽기를 권장한 어두운 과거를 일본 승려들은 오랫동안 외면해 왔다.
한국 조계종의 전신이자 베트남 반전 운동을 벌인 틱낫한 스님이 속한 임제종은, 중국 선종 5가 중 하나로서 일본 불교계에서도 손꼽히는 유력 선불교 종파다. 임제종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제국에 협력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전쟁이 끝난 뒤 5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2001년. 이들이 뒤늦게 지난날의 과오를 돌아보게 된 계기를 제공한 이가 바로 그 자신도 승려인 《불교 파시즘》의 저자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다. 40여 년 동안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연구한 학자이기도 한 그는 불교와 일본 군국주의의 공모를 고발하고 분석하여 서구와 일본 불교계에 큰 충격과 논쟁을 불러왔다. 임제종의 최대 분파인 묘신사파는 2001년 10월 9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이 파란 눈의 승려에게 전쟁 책임 문제를 환기해준 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불교 파시즘》 407쪽 ‘후기’ 참조)

난징 대학살도, 가미카제 특공대도 불교가 뒷받침했다

《불교 파시즘》에는 일본 불교계마저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전시 불교의 타락을 보여주는 증거가 가득하다. 지금도 널리 존경받는 일본의 선사들 중에는 병사로서 전쟁에 참전하고 나서도 희생자들에 대한 죄의식을 평생 느끼지 않은 승려가 있는가 하면(36쪽), 자신이 운영하는 사찰을 군대를 위해 아낌없이 제공하고(182쪽), 천황 중심 사회를 만들기 위한 쿠데타에 가담해 몸소 칼을 쥐는 등(99쪽) 국가 폭력에 저항하기는커녕 적극 협조했던 승려들이 무수히 많다. 이러한 사례들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당시 일본 불교계 대부분을 지배한 경향이었음을 이 책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승려들이 저지른 만행의 배경에는 그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오용된 불교의 교리가 있었다. 자비, 깨달음, 무아(無我), 업(業), 열반, 정토 왕생, 생사일여(生死一如)와 같은 불교의 핵심 교리들이 전쟁과 살인을 옹호하기 위한 도구로 둔갑했다. 이를테면 난징 대학살을 필두로 하여 일본군이 각지에서 자행한 중국인 학살은 “그들에게서 ‘번뇌’를 없애주는 불교의 자비심의 표현”(42쪽)이라고 설명되었다.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살 공격은 “개인적인 자아를 부정하고 스스로 역사의 짐을 떠맡은 영혼의 재탄생”이며 곧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것”(250쪽)이라고 칭송받았다.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여 숱한 일본제국 군대 장교와 병사들이 적군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그들은 전쟁터에서도 불경을 놓지 않은 신실한 불교도였으면서도(294쪽), 아니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의 정당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교리에 기대 죽고 죽이다

비록 몸은 죽더라도 생사일여를 통해 국가의 영원한 삶 속에서
계속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 추구해야 한다.
- 일본제국 군대의 교육을 위한 지침서 《정신 교육 자료》(1941) 중에서

“나는 죽을 준비를 갖추고 여기 서 있다!”(244쪽)고 외치며 돌격하는 일본 병사들에 직면하여 당시 그들의 적수였던 미군은 물론이고 많은 서구 학자들이 당황했다. 일본인이 아닌 사람들의 눈에 기꺼이 죽기를 원하는 일본 병사들의 태도는 지극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저자는 이 ‘사무라이 정신’의 배경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불교의 생사관이었다고 지적한다.

군인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살인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지우는 데는 불교에서 말하는 생사일여, 즉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가르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생사일여의 가르침은 선종 불교의 역사에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당나라 때 승려 원규가 죽음의 위협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기록이 대표적이다. “나는 본래 태어나지 않았으니 당신이 어떻게 나를 죽일 수 있겠는가? 내 몸은 허공과 같으며, 나는 나 자신이 당신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데, 당신이 어떻게 허공을 없애거나 당신 자신을 파괴할 수 있겠는가?”(247쪽) 일본 국사(國師)였던 14세기 승려 간잔 에겐은 생사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내겐 처음부터 생사가 없었어!”라고 소리를 질렀고(227쪽), 17세기의 유명한 고승 하쿠인 에카쿠는 깨달음의 순간 “죽음은 좋은 것이고, 삶은 훨씬 더 좋은 것이다. 삶은 좋은 것이고, 죽음은 훨씬 더 좋은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210쪽)

조국을 위해 명예롭게 죽기를 권한 불교
일본제국에서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던 육군 장교 스기모토 고로는 생사일여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일본 군인 중 한 명이다. 그는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10년에 가까운 오랜 시간을 절에서 수행한 선불교의 재가 제자였다. 스기모토가 중일전쟁에서 전사한 뒤 나온 그의 글 모음 《대의(大義)》는 전쟁 동안 일본에서 1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였는데, 제국 군인과 고위 관료들은 물론 승려들에게도 높이 평가받았다. 《대의》에서 스기모토는 거듭 선불교의 생사관을 강조한다.

“선 수행을 통해 나는 자기를 제거할 수 있었다. 이 깨달음을 달성하는 일을 돕기 때문에 선은 제국 군대의 참된 정신이 된다. …… 선 수행으로 삶과 죽음이 명확해지고, 그럼으로써 삶과 죽음을 제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게다가 선 수행으로 나는 완전히 순수해질 수 있고, 그럼으로써 진정한 군인이 되고 싶은 소망을 이룰 수 있다.” ─ 7장 살생과 무아(無我)ㆍ226쪽에서

“선은 제국 군대의 참된 정신이 된다.”는 스기모토의 말은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에 의해 실현되었다. 도조 히데키가 1941년에 공표하여 일본제국 군대의 모든 병사에게 배포한 야전 규정집 《전진훈(戰陣訓)》은 “전시의 다른 어떤 문서보다도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일본 군인 정신을 잘 요약”(195쪽)해놓은 책이었다. 《전진훈》은 장병들의 필독서였을 뿐 아니라 민간에도 널리 영향을 끼쳤다. 《전진훈》을 일반 독자 대상으로 해설한 책이 여러 출판사에서 우후죽순 출간되었고(230쪽), 승려들은 불교의 생사관을 가르치는 교재로서 《전진훈》을 ‘역수입’했다.(234쪽)
선불교의 가르침을 그대로 가져온 《전진훈》을 읽고 “일본 군인(적어도 잘 세뇌된 군인)은 전쟁터에서 죽을 결심을 확고하게 했다. 일본 군인에게 유일한 문제는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죽을 것인가, 즉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고 죽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239쪽)
《전진훈》의 제2장 제8절은 다음과 같았다. “살아서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하지 말고 죽어서 죄화(罪禍)의 오명을 남기지 말라.”(195쪽) 이 조항으로 인해 일본 군인과 민간인 수십만 명이 항복 대신 자살을 선택하고 무의미하게 죽어 갔다. 연합군이 상륙했을 때 사이판에서 벌어진 참극이 대표적 예다.

항복을 거부한 일본인들은 실전으로 단련된 해병대 병사들조차 경악하게 만든 죽음의 축제를 벌였다. 전 가족이 함께 물에 빠져 죽으러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거나, 수류탄을 터뜨려 죽으려고 옹송그려 모이거나, 혹은 부모들이 자식들을 먼저 내던지고 나서 함께 죽기 위해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 살아남은 민간인들은 일본 수비대가 연합군의 상륙에 대비한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열었던, 《전진훈》의 정신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 7장 살생과 무아(無我)ㆍ254쪽에서

무아(無我)의 가치관, 자살 특공대의 등을 떠밀다

우리는 누구나 생명에 매우 강하게 집착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집착을 버려야만 비로소 우리는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고귀한 정신을 획득할 수 있다. ……
불도 실천의 핵심은 자아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소아(小我)의 생각을 없애버릴 때, 우리는 참된 일본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 승려 오모리 젠카이

“사랑하는 우리 조국에 미천한 나 자신을 바치는 공적을 세우며 영광을 누려야 한다.”(244쪽) 러일전쟁에 참전한 유명한 군인 사쿠라이 다다요시 대위의 회고록에 나오는 구절이다. 저자는 ‘미천한 나 자신을 바치는’ 것에서 불교의 핵심 교리인 무아를 발견한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뒤 최초로 설파한 가르침인 무아는 무사(無私), 대아(大我), 몰아(沒我), 망아(忘我), 멸사(滅私)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불변하는 실체로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의 가치관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일본 군인의 생사관에서 또 다른 뿌리를 구성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아가 존재하지 않으면 태어남이 삶의 시작을 나타내지 않는 것과 같이 죽음이 삶의 끝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246쪽)

실제로 무아 개념은 일본제국 군인들이 직접 남긴 목소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해군 소위 요시다 미쓰루는 자살 사명을 띤 전함 야마토 호에 타고 출격하기 직전 일기에 “무아 상태에서 필살의 투지도 기를 것이다.”라고 썼다. 육군 장군 가와베 마사카즈는 《전진훈》을 평가하며 “《전진훈》은 일심동체인 육군과 해군 전체가 생사를 초월해 몰아 상태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명확히 설명했다.”고 칭찬했다. ─ 7장 살생과 무아(無我)ㆍ245쪽에서

내 목숨이 가벼우면 적의 목숨도 가볍다
생사일여와 무아의 가르침이 오남용된 탓에 희생된 것은 일본인의 목숨만이 아니었다. 난징 대학살에 참가했던 병사 아즈마 시로는 자신이 저지른 강간과 약탈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 생명이 중요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적의 생명은 훨씬 덜 중요해진다. …… 이런 철학으로 인해 우리는 적군을 경시했고, 이것은 결국 포로들의 대량 살해와 학대로 이어졌다.”(263쪽)
일본 군인에게 ‘명예롭게’ 죽는 것이 군인으로서 가장 큰 영광이라면, 살아서 포로로 잡히는 것은 가장 큰 치욕이었다. 일본 군인들은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죽지 못한 포로들을 경멸했고, 따라서 그들을 죽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군이 죽인 포로 숫자를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이 죽인 포로 숫자와 비교해보면 저자의 주장은 한층 설득력을 더한다.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에 잡혔다고 보고된 254,473명의 미군과 영국군 포로 가운데서 단지 4퍼센트(9,348명)만이 그들을 잡은 사람들의 손에 죽었다. 이 숫자는 일본의 앵글로아메리카인 포로 중 살아남지 못한 27퍼센트(132,134명 중 35,756명)와 사뭇 비교된다. 이와 같은 숫자를 고려할 때, 체념하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 일본 군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연합군 포로들의 생명을 존중하거나 그런 문제에 마음을 쓸 수 있었을지 여부도 생각해봐야 한다. ─ 7장 살생과 무아(無我)ㆍ262쪽에서
남편이 죽은 것은 업(業)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전장에서 죽거나, 인생의 이른 시기에 과부가 되거나,
혹은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고아가 되는 것은 우연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단 한 발의 탄환도 적으로부터 우연히 날아오는 일은 없다.
그것은 명백히 업의 작용이다.
- 승려 도모마쓰 엔타이

불교에서 나온 생사일여와 무아의 가르침을 무기 삼아 병사들이 기꺼이 죽음으로 달려갔다면, 또 다른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업의 교리는 혈육을 잃은 병사들의 유가족을 위로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1941년 12월 25일, 승려 도모마쓰 엔타이는 《유족 독본(遺族讀本)》이라는 소책자를 출간했다. “그의 죽음은 누구의 탓도 아니고, 또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일어난 일에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죽는 것이 그의 업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284쪽)라고 그는 썼다. 이러한 가르침은 일본의 사회 지도자들이 전쟁 책임을 회피하는 데도 크게 공헌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에도 세상 사람들은 독일인과 달리 일본 국민 전체가 자신들의 전쟁 책임에 정면으로 대처하는 데 그토록 어려워하는 이유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 적어도 그 이유의 일부는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엔타이 스님 같은 사람들에 의해 정식화된 업의 교리에서 찾아야 한다. …… 사회의 개인들이 치르는 대가는 자업자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일관된 업의 작용’ 앞에서 일본 지도자들의 전쟁 책임을 어떻게 밝혀낼 수 있겠는가? ─ 8장 남편이 죽은 것은 업(業) 때문이다ㆍ285쪽에서

가족의 죽음이 자업자득이라면 당연히 슬퍼할 필요도 없다. 승려 야마다 레이린은 여기에 더해 윤회 사상에서 힌트를 얻어 유가족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다. “‘천황 폐하 만세!’ 하고 외치며 죽은 장교와 사병들의 충성스럽고 용맹하며 고귀하고 영웅적인 정신은 바로 여기 이 나라에 다시 태어날 것이다.”(279쪽)

열반의 경지에 이르면 슬프지 않다
한편 종군 승려로 복무했던 나카가와 소엔은 슬퍼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저 슬퍼하기만 해서는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애통함은 자기 중심주의의 산물이므로 모든 깨달은 정신과 마음은 그것을 멀리해야 한다.”(278쪽) 승려 도모마쓰 엔타이는 저서 《유족 독본》에서 슬픔을 초월하고 깨달음을 얻어 열반의 경지에 다다른 유가족을 소개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감사했으며, 천황의 인자한 자비심에 대한 존경심이 넘쳐흘렀다. 엔타이 스님은 이들을 본받아야 한다며 전사자의 유족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2, 3년 전에 잃고도 방금 여기에서 이야기한 전사자 유족들과 똑같은 상태에 이른 사람들이 이 나라 곳곳에 존재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들에게서 바로 최근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의 모범을 발견한다. 게다가 그들은 이 나라의 모든 국민에게 말없이 교훈을 보여주었다. 모든 유족이 가능한 한 빨리 이런 마지막 단계에 이르길 기원한다. ─ 8장 남편이 죽은 것은 업(業) 때문이다ㆍ287쪽에서

극락 왕생을 꿈꾼 A급 전범들

이 손수건의 상표는 영어로 대포를 의미하는 ‘캐넌(Cannon)’입니다.
하지만 일본어로 발음하면 정확히 ‘간논(관음觀音)’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내가 관세음보살님이 친절하게도
손수건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도조 히데키, 사형을 앞두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일본제국과 불교의 친밀한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전범이 되어 사형으로 전쟁 책임에 대한 죗값을 치르게 된 일본 군 수뇌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또다시 불교를 통해 씻어냈다.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와 관동군 사령관 도이하라 겐지는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정토종으로 개종했다. 정토종에서는 누구든지 깊은 신앙심을 갖고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서방 정토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가르친다. “불교는 …… 과거에 얼마나 ‘사악했든’ 간에 개인적인 구원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약속해주었다.”(353쪽)

처형되는 순간에는 어떤 경전도 필요 없다고 언급한 뒤에 도조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나무아미타불’ 하고 염불하는 것뿐입니다. 길 끝에 이르렀을 때는 ‘나무아미타불’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생사를 초월해야 합니다.” 처형의 순간이 다가오자 도조가 이렇게 소리쳤다고 신쇼 스님은 전한다. “천황 폐하 만세!” 그러고 나서 도조는 사형 집행실로 걸어갔다. 그는 1948년 12월 23일 자정 1분 후에 교수대 계단을 올라갔다. 사람들의 귀에 들린 그의 마지막 말은 ‘나무아미타불’이었다. ─ 10장 전범들의 피난처, 불교ㆍ330쪽에서

승려가 될 뻔한 히로히토 천황
전범으로 기소된 적은 없지만 전쟁에 책임이 있음이 명확한 히로히토 천황 역시 패전 이후 불교에서 피난처를 찾는 처지에 놓였다. 1945년 1월, 패전이 몇 달 남지 않았을 때 총리대신 고노에 후미마로는 천황을 승려로 만들자는 놀라운 계획을 내놓았다. 천황이 일본의 전통 신앙 신도에서 ‘살아 있는 신(現人神)’으로 모시는 존재임을 고려하면 믿기 힘든 이야기다. 고노에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연합군도 승려가 되신 천황 폐하를 괴롭히진 않을 것입니다.”(347쪽) 히로히토가 전범으로 기소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황실 제도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짜낸 기상천외한 계책이었다.
고노에의 계획이 실행되었다면 히로히토는 불교를 진흥했던 9세기 우다 천황이 세운 닌나사의 주지 스님이 되었을 것이다. 연합국은 히로히토에게 전쟁 책임을 묻지 않았고 결국 고노에의 계획은 불발로 끝났지만, 이러한 계획은 실제로 실행 직전까지 갔으며 닌나사의 원래 주지 스님은 흔쾌히 주지 자리를 내놓았다. 불교가 정치에 동원된 또 하나의 사례다.

불교의 계율은 인간의 생명을 빼앗은 죄를 범했다면 누구든지 승가에서 쫓아내라고 요구하는데도 닌나사 주지였던 오카모토 지코 스님은 이 계율을 신경 쓰지 않았다. 주지직에서 물러나기로 동의할 때 지코 스님은 단지 불교가 국가에 복종하는 전통을 따랐을 뿐이었다. 그 전통은 닌나사의 경우에 이미 1천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 10장 전범들의 피난처, 불교ㆍ348쪽에서

도덕적 판단을 포기한 승려들

선에는 특별한 교리도 철학도, 일련의 개념도 지적인 법칙도 없다. ……
그래서 선은 그 직관적인 가르침이 방해받지 않는 한 거의 모든 철학과 도덕론에 극히 유연하게 적응한다.
선은 아나키즘이나 파시즘, 공산주의나 민주주의, 무신론이나 관념론,
혹은 어떤 정치적·경제적 독단론과도 결합할 수 있다.
- 승려 스즈키 다이세쓰 데이타로

선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깨달은 사람들은 삶과 죽음뿐 아니라 선과 악을 포함한 모든 이원성(二元性)을 초월한다. “깨달은 존재들은, 불교의 계율이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명하는 도덕적인 제약의 지배를 더는 받지 않는다.”(43쪽) 서구에 선불교를 처음으로 전파한 승려 스즈키 다이세쓰 데이타로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선불교의 이러한 특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선은 영혼의 불멸이나 정의, 신성한 길, 혹은 윤리적인 행동과 관련해 …… 언쟁을 벌일 필요가 없으며, 단지 한 사람이 도달한 결론이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그 결론을 가슴에 품고 전진하라고 촉구할 뿐이다. 철학은 지적인 정신을 지니고 안전하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은 행동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일단 결심을 하면 가장 효과적인 행동은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 ─ 3장 선(禪)과 암살ㆍ80쪽에서

초국가주의 암살 조직 혈맹단을 지휘한 승려 이노우에 닛쇼는 이러한 가르침을 충실히 실천에 옮겼다. 깨달음을 얻고 나서 그는 “선과 악의 특정한 개념에 집착하거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370쪽)는 진리에 다다랐다. 천황을 중심에 둔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혁명 수단으로 암살을 택하는 데 이노우에는 한 점 주저함이 없었다. 암살을 택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노우에는 불교의 자비심을 내세웠다. “우리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멸하는 것이었다. …… 자멸하는 과정에서 희생자들이 생긴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우리 혁명의 근본적인 원리였다. 큰 자비심이 우리 혁명의 기본 정신이었다.”(377쪽)
체포되어 재판받을 때도 이노우에는 “나는 행동할 때 주로 불교 사상의 인도를 받았다.”(380쪽)고 당당히 선언했다. 일찍이 그의 스승이었던 승려 야마모토 겐포가 제자를 위해 법정으로 달려왔다. 이후 임제종의 최대 분파 묘신사파의 관장으로 선출된 고승인 그는 이노우에를 다음과 같이 적극 변호했다.

“불교의 모든 조각상은 부처의 정신을 나타내는데,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의 조각상 외에 칼을 쥐고 있지 않은 불교 조각상은 없다. 어린이들의 보호자인 지장보살조차 전쟁의 승리자로 나타날 때는 손에 창을 들고 있다. 따라서 참된 인간성의 완성에 기반을 둔 불교는, 사회의 화합을 해치려 하는 사람이 있으면 선량한 사람이라도 죽일 수밖에 없다.” ─ 11장 ‘황도 불교’라는 괴물ㆍ383쪽에서

선도 악도 없는 절대적 영역
살인자 제자를 변호한 승려는 한 명이 아니다. 역시 천황 숭배자였던 군인 아이자와 사부로는 천황의 직접 통치를 신속하게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겼던 상관 나가타 데쓰잔 소장을 칼로 찔러 암살했다. 군법회의에 회부된 아이자와가 암살을 실행에 옮길 때 자신의 심리 상태를 설명한 “나는 절대적인 영역에 있었다. 그래서 긍정도 부정도, 선도 악도 없었다.”(74쪽)는 증언에서 이원성의 초월에 대한 선불교의 가르침의 영향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다. 그는 유명한 사찰 린노사에서 수 년 동안 수행한 속가 제자였다.
제자를 변호하기 위해 린노사의 주지 스님인 후쿠사다 무가이가 법정에 나왔다. 저자는 “무가이 선사는 자기 제자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깊이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80쪽)고 지적한다. 무가이는 “그의 행동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에 앞서, 나는 그가 행동하기 전에 되풀이해서 그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며 “나만은 그가 어째서 그렇게 행동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고 호소했다. 또 제자의 ‘확고부동한 불굴의 신념’과 더불어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꺼이 칭찬했다.(76쪽)

‘황도 불교’라는 괴물

우주의 창조와 진화의 자비로운 근원은 태양의 여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일본 정신이 일본 불교의 특질이라면
일본 불교도들이 절대적으로 헌신할 대상은 태양의 여신임에 틀림없다.
- 일본 사법성의 극비 문서 《불교와 사회운동》 중에서

전시 일본 정부가 배태한 기형아 ‘황도 불교’는 정치에 종속된 종교가 다다를 수 있는 나락의 끝을 보여준다. 1939년 일본 사법성은 ‘불교와 사회운동’이라는 제목의 극비 문서를 발행했다. 이 문서의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일본 불교 개혁의 필요성’이라는 장에는, “불교도들은 여러 부처와 보살의 본질로서 천황을 숭배해야 한다.”(392쪽)는 주장이 버젓이 실려 있다. 저자는 일본 정부의 공식 승인을 받은 문서에 수록된 이 글이 “현재 입수할 수 있는 어떤 자료보다도 일본 정부가 불교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뿐만 아니라 불교에 무엇을 기대했는지까지 진실에 가깝게 설명해준다.”(385쪽)고 설명한다. 이 문서의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다.

불교의 이상은 종파 없이 전체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에서 불교의 지도 원리는 우리 조국을 구원하는 것이다. 황도 불교의 미래는 일본 정신의 고양을 생각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불교의 종파들은 다툼을 중단하고, 일본 정신이라는 진리이면서 동시에 우리 국민의 공통된 조상인 태양의 여신을 주요 숭배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현대 불교가 실제로 준수해야 할 사항이다. ─ 11장 ‘황도 불교’라는 괴물ㆍ388쪽에서

이 광신적 글을 쓴 검사 오가타 히로시는 결코 불교 교리에 무지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것이 이 글의 가장 섬뜩한 측면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일본에 전래되기 이전의 대승불교뿐 아니라 인도에서 설파된 불교 초기의 가르침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가타가 지닌 불교 지식은 그가 당시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주의적이고 광적인 신앙을 받아들이고 장려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396쪽)
실제로 일본 불교가 숭배 대상을 태양의 여신으로 통일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으나, 천황 숭배를 독려한 승려는 적지 않았다. ‘전쟁의 신’ 스기모토 고로 중좌의 스승이기도 한 승려 야마모토 에키주는 “일본 국민의 신앙은 천황 폐하에 중심을 두어야 하는 신앙이다.”라고 말한 바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전시 일본 제도권 불교의 모든 지도자들이 공유한 것이었다.(397쪽) 또한 제도권 불교는 실제로 ‘황도 불교’라는 문구를 서슴없이 채택하기도 했다. 정토진종의 니시혼간사파는 “정토진종에는 천황제 국체에 대한 복종을 지지하지 않는 가르침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398쪽)

학살을 정당화한 종교의 오래된 역사

고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정부 당국의 합법적인 비호를 받는
살인에는 종교적인 용품과 의식(儀式)이 함께했다.
사람들은 전쟁터에 나간 뒤 기도와 축복과 주문(呪文) 속에서 죽음에 이른다.
- 사회학자 피터 버거

전쟁과 살인을 지지한 불교의 어두운 역사는 과연 20세기 초 일본에 한정된 것일까? 불교도이자 승려로서 저자는 “전시 일본 불교 지도자들이 이런 시도를 처음 한 승려도 아니고, 또 마지막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287쪽)라고 말한다.

불교 교리가 정말 ‘왜곡되어 있다면’, 그러한 왜곡은 불교의 역사에서 수많은 유사한 사례 중 하나일 뿐이고, 또 1천 년도 더 된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이것을 부정한다면 불교가 다른 세계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대량 학살을 부추기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정당화해 왔다는 불편한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 8장 남편이 죽은 것은 업(業) 때문이다ㆍ289쪽에서

1,500년 전 중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수나라 문제는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가 중요한 전투에서 이긴 장소마다 사찰을 지음으로써 군사 작전을 전개하는 데서 불교 승려들의 정신적인 협력을 얻었다. 그는 이 사찰들에 거주하는 승려에게 죽은 병사들의 영혼을 기리는 위령제를 지내라고 명함으로써 아직 살아 있는 병사들에게 장차 전쟁터에서 죽으면 그들의 영혼도 돌봄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288쪽)
오늘날에도 아시아 여러 나라의 불교 지도자들이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불교를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리랑카 신할리족의 불교 지도자들은 “승가와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불교의 기본 교리에 어긋날지언정 ‘타인’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합리화함으로써”(289쪽) 비불교도인 소수의 타밀족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용인했다.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져 온 ‘성전(聖戰)’
불교의 범위를 넘어 생각해봐도 다르지 않다. “모든 종교가 한두 번쯤 ‘성전’이나 ‘지하드’, ‘정의로운 전쟁’ 등으로 불리는 것에 참여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399쪽) 기독교는 11~13세기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침묵을 지켰다. 1980년대 이란과 이라크는 이슬람교의 이름으로 종교적 ‘성전’을 벌였다.
저자의 궁극적 관심사는 “전 세계 여러 종교의 사려 깊은 신자들이 자신들의 국가가 시작한 전쟁과 자신들의 신앙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관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400쪽) 하는 데 있다. 《불교 파시즘》이 고발하는 일본제국 군대와 승려들의 유착은 바로 이러한 반성과 성찰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역사적 사례다. 앞으로 또 다시 벌어질지 모를 ‘성전’을 막기 위해, 저자는 불교를 포함한 전 세계의 모든 종교에 민족적 정체성이나 국가적 정체성 혹은 종교적 정체성을 초월하는 “좀 더 보편적이거나 세계적인 윤리”(405쪽)를 구축할 것을 촉구한다.

[목차]
머리말 / 감사의 말

1부

1장 병사가 된 스님
제국 군대에 자원하다
선불교의 도덕적 맹목성

2장 군대로 간 선불교
‘총력전’과 무사
절에서 배우다
선(禪)이 군대에서 사랑받은 이유

3장 선(禪)과 암살
나가타 데쓰잔 소장 암살 사건
암살을 지지한 선의 논리

4장 천황을 숭배하는 선사
‘착한’ 지킬 박사 오모리 선사
‘나쁜’ 하이드 씨 오모리 소겐
극우파 소겐 선사의 정치적 삶

5장 서양에 선을 전파한 반유대주의 선사
전쟁의 선전 도구가 된 불교 경전
선과 반유대주의
전후 이념 투쟁의 선봉
‘이데올로기적 경찰’이 된 선

6장 중국으로 간 일본 선
만주국의 일본 불교 대표단
만주국에 세워진 일본 사찰
선과 ‘악의 평범성’

7장 살생과 무아(無我)
장군의 선 수행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깨달음
군인 정신과 집단 자살
내 목숨이 가벼우면 적의 목숨도 가볍다

2부

8장 남편이 죽은 것은 업(業) 때문이다
전사자를 추모하는 불교
살육을 정당화해 온 불교 교리
선과 파시즘의 결합

9장 어느 종군 승려의 고백
전쟁터의 《묘법연화경》
불교의 숙명론과 무책임
불살생과 살육전

10장 전범들의 피난처, 불교
승려로 변장한 장교
사형수 독방에서 찾은 아미타불
승려가 될 뻔한 히로히토 천황
‘나무아미타불’을 외는 전범들

11장 ‘황도 불교’라는 괴물
일본 정부가 두려워한 좌우익 불교
천황을 모시는 ‘황도 불교’
광신으로 간 일본 불교의 비극

맺음말 / 후기 / 주석 / 참고 문헌
옮긴이 후기 / 찾아보기

[저자소개]
저자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Brian Daizen Victoria)는
미국 앤티오크 대학 교수. 일본 고마자와 대학에서 불교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템플 대학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에서 불교에 귀의하여 일본 최대의 선불교 종파 조동종의 인가를 받고 정식 승려가 되었다. 종교인으로서 베트남 반전 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하여 40여 년 동안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연구했다. 특히 자비와 평화의 종교로 여겨져 온 불교가 일본 군국주의에 동원된 이유와 배경을 분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연구 성과를 본격적으로 정리해 출간한 첫 번째 책 《전쟁과 선(Zen at War)》(1997)으로 학계와 종교계에 일대 충격을 불러왔다. 빅토리아의 통렬한 고발은 일본 선불교 승려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 협력한 과거를 잇달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슬라보예 지젝,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 종교와 사회를 논하는 다양한 지식인들의 담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뒤이어 내놓은 《불교 파시즘(Zen War Stories)》(2003)에서 그는 선불교를 포함한 불교 전체로 시야를 넓히는 동시에 이름 높은 선사들이 저지른 교리 왜곡과 군국주의와의 야합을 한층 더 치밀하게 추적했다.
역자 박광순은 1955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범대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범우사, 기린원 등에서 편집국장 및 편집주간을 지냈다. 도서출판 늘푸른나무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저술가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헤로도토스 역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갈리아 전기》 《카이사르 내란기》 《서구의 몰락》 《게르마니아》 《타키투스의 연대기》 《로마인의 흥망성쇠 원인론》 《무기의 역사》 《비잔틴 제국의 역사》 《세계를 바꾼 어느 물고기의 역사》 《용기 있는 사람들》 《트로츠키 나의 생애》 《아틀란티스의 유산》 《즐거운 인생의 처방전》 《아버지가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 《지의 편집 공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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